"의사 부족하다 vs 적정하다"…여론 향방 가를 '의대 증원' 쟁점

박미주 기자, 박정렬 기자 2024. 2. 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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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연간 의과대학 정원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 정부와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어느 쪽의 논리가 합당한 지가 여론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35년까지 의사 인력이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보고 5년 간 2000명씩 1만명을 늘릴 계획이다. 이후 의대 정원은 조절하겠단 방침이다. 내년 의대 정원이 5058명으로 늘면 1998년 이후 27년 만의 증원이 된다. 당시 3507명이던 의대 정원은 의약분업으로 2006년 3058명으로 줄었고 이후 올해까지 19년째 동결됐다.

반면 의협은 의사 인력은 부족하지 않으며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정책을 펴는 게 먼저라며 집단대응에 들어갔다. 적정 의사 인력, 의학 교육의 질, 필수의료 대책 관련 등 양측의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의사 수, 적정하다 vs 부족하다
(의협)의사 수가 적은 것은 맞지만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와 입원 일수는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1~2위를 다툰다. 당일 진료를 받는 비율도 거의 100%에 육박할 만큼 의료 접근성이 높다.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과 같은 대부분의 보건 의료지표도 OECD 최상위권이다. 단순히 의사 수를 가지고 산적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근시안적이다. 오히려 의사 수를 갑자기 늘리면 고령층의 의료 수요 충족에 따른 의료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향후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부를 수 있다.

(정부)현재 의료 취약지구에서 활동하는 의사 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약 5000명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안할 경우 2035년에 1만명 수준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전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KDI(한국개발연구원), 서울대 세 보고서에서 이런결론이 나온다. 2035년 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9654명, KDI는 1만650명,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1만816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못 미친다.

의대 증원 숫자, 비과학적 vs 과학적
(의협)의사 수급 외에도 의료 질에 미치는 영향, 인구구조 변화, 의료기술 발전, 의료제도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을 폭넓게 고려해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결정한 것은 이미 확대하기로 결정한 채 전국 40개 의대의 수요 조사 결과(2151~2847명)만 반영한 것으로 비과학적이다.

(정부)의대증원 규모는 KDI와 보건사회연구원, 홍윤철 서울대 교수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다. 정부가 제시한 규모가 과학적이지 않다면, 과연 어떤 것이 과학적인지 되묻고 싶다. 2035년 65세 이상 인구수는 현재보다 70% 늘어나 입원일수는 45%, 외래일수는 1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000명 증원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를 고려한 결과다.

지난 19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의학교육, 질 저하될 것 vs 문제없다
(의협)한꺼번에 지금보다 60% 이상 학생이 증가하면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1년 내로 의학 교육을 위한 기초·임상의학 교수진과 강의실 등 교육시설을 충분히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1980년대 의과대학 정원은 지금보다 많다고 하지만 당시에도 교육의 질적 하락은 문제였다.

(정부)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문제는 없다. 1980년대 주요 의과대학의 정원은 지금보다 많은 수준이었다. 서울대 의대는 당시 정원 260명, 현재 135명이고 부산대는 당시 208명, 현재는 125명이며 경북대는 당시 208명, 현재는 110명으로 그 절반 수준이다. 반면 교수 수가 훨씬 늘어나는 등 현재의 의대 교육 여건은 크게 개선됐다. 서울대 의과대학의 경우 1985년도에 비해 2023년 기준으로 기초교수는 2.5배, 임상교수는 3배 늘었다. 정부는 수요조사 결과를 점검해 2000명을 늘리더라도 현재의 의학 교육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부 일방적 결정 vs 협상해
(의협)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나왔다. 2020년 전공의 집단 휴진(파업) 당시 정부와 의대 정원을 포함한 4개 주요 의료정책을 협의 후 진행한다는 내용의 9.4 의정 합의를 맺었지만 휴지 조각이 됐다. 아울러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역시 협의체에서 의사와 논의된 바 없는 혼합진료 금지, 개원 면허 및 면허갱신제 도입 등이 담겨 있다. 그동안의 신뢰를 먼저 무너트린 건 정부다.
(정부)일방적 결정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각계와 총 130회가 넘는 협의를 진행했고 특히 정부와 의사협회만으로 구성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총 28번의 논의를 했다. 의사단체가 제시한 수가 인상, 의료사고 부담 완화, 근무 여건의 개선 등은 필수의료 종합 패키지의 대책으로 담아 발표했다. 정부는 공문으로 의사단체에 의대정원 규모를 제시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답변하지 않았고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해 왔다. 의사단체와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 추진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필수의료 대책 먼저 vs 관련 정책 추진할 것
(의협)전체 의사 수가 늘면 자연스럽게 지역·공공·필수 의료로 의사가 흘러 들어간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는 입증된 바 없는 궤변일 뿐이다. 정부가 지난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필수 의료 지원책을 잇달아 내놨는데도 각 진료과 전공의 지원율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혁신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의사만 늘리면 피부과·성형외과 등 미용 시장만 커질 뿐이다.

(정부)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개혁을 해야 하고 의사 인력 확충은 의료개혁의 필요조건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 2028년까지 5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한다. 진료수가 인상, 전공의 노동환경 개선, 의사들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을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담았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사법적 부담은 덜어주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다. 올해부터 중증·소아·분만 등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인상했다. 공정한 보상을 위한 수가 체계 개선을 신속히 추진하겠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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