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기냐, 통합이냐…‘약속사면’ 논란에 높아진 대통령 사면권 제한 목소리
재판 결과에 불복하던 정관계 인사들이 사면 심사를 1~2일 앞둔 시점에 돌연 입장을 바꿔 형을 확정 받는다. 그리고 사면 대상에 포함돼 한참 남은 형기를 통째로 면제받는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단행한 설 명절 특별사면에 드러난 양상이다.
이처럼 사면 가능성을 예견한 듯 급하게 상고를 취하하거나 포기하고 사면을 받는 이른바 ‘약속사면’ 논란은 과거 정부에서부터 이어진 문제다. 다만 이번 설 특별사면 무렵 정관계 출신 피고인들의 ‘동시다발’ 상고 취하·포기는 유독 두드러진다. 사법권을 형해화하는 대통령의 제왕적 사면권 행사라는 지적과 함께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면 때마다 반복되는 ‘벼락치기’ 상고 취하, 우연일까?
1995년 8월 김영삼 대통령 때도 약속 사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사면 대상에 올랐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상고를 취하한 지 7일 만에 사면된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30일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서형석 전 대우 기조실장, 유현근 전 대우건설 이사, 박영하 전 대우 국제금융팀장 등을 사면했는데 이들도 대부분 특사 발표 직전 항소·상고를 포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특사에서 국정원의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된 신건·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사면했다. 신·임 전 원장 모두 대법원에 상고한 당일 곧바로 취하했다. 그리고 형을 확정 받은 지 나흘 만에 사면을 받아 사전 교감 의혹이 확산됐다.
‘당시의 야당’은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2007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특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 시한 마지막 날 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했다가 다시 상고를 취하했다. 결국 청와대로부터 사면을 언질받은 것”이라면서 “항소심 재판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대법원 상고를 취하하고 사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근의 ‘무더기 약속사면’ 논란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사면심사위원회 개최 전날 재상고를 취하하거나 포기했다. 김대열 전 기무사 참모장도 변호사 선임계와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에 상고를 취하하고 사면을 받았다.
법무부는 지난 19일 경향신문에 “사면심사위 진행 전 심사 대상자에게 심사 예정사실 등을 통지하는 절차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면심사에 앞서 대상자들과 사전 교감 의혹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약속사면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사법권 무력화하는 사면권? 어디까지 대통령의 권한일까
사면법 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 이유이다. 국회에는 사면법 개정안이 5건 발의돼 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일정한 형기를 충족하지 않은 사람이나 대통령의 친족 등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 발의안은 이에 더해 특정범죄나 특정경제범죄 등을 저지른 사람을 제외하도록 했다. 법이 이렇게 개정되면 김관진 전 장관처럼 단 하루도 복역하지 않고 특사로 징역 2년을 면제 받는 경우는 나올 수 없다.
해외 사례도 있다. 일본은 유기 징역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이후, 무기 징역은 10년 이후 사면이 가능하도록 했다. 덴마크는 행정부 장관 출신 인사에 대한 사면을 제한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예전부터 사면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이번처럼 몇백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무더기 사면을 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다만 사면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자격 요건에 대해서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한 교수는 약속사면 논란에 관해선 “개인이 자발적으로 상고를 취하하는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엄밀히 보면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재판이 진행될 사안”이라면서 “진행 중인 사법 절차에 정부가 개입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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