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이탈 의료 파행 본격화…전국 병원 비상 운영 돌입

▲ 전공의 부재 진료 지연 안내문 붙은 대학병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이탈 사태가 전국적으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병원 지방자치단체들은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전국 의대생들이 휴학계까지 제출하며 집단행동에 가세하고 있어 의료 파행 사태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외래 진료가 쉴 새 없이 이뤄지는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의 경우 여느 때처럼 진료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병원 전공의 224명 가운데 216명이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근무하기로 한 신규 인턴 50여 명 역시 임용포기 각서를 썼습니다.

유방암을 앓아 3주에 한 번씩 이곳에서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60대 김 모 씨는 수술을 마치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만약 사태가 장기화해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남은 치료는 어떻게 하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지역 대학병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른 오전부터 진료받기 위해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을 찾은 환자 수십 명은 혹여나 진료가 취소될까 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창구와 진료실 앞 좌석에 마련된 접수 현황판을 바라보던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의료진에게 오늘(20일) 진료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병원 소속 전공의 319명 중 70％가량인 224명이 사직서를 냈고, 오늘 오전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마저 전해지자 일부는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상체에 화상을 입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병원에서 생활한다는 70대 요양보호사는 어제 오전부터 담당 의사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환부가 악화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충남대병원에 입원 중인 오재영(59) 씨는 지난 주말 복통 증세로 성모병원에 계속 전화했는데도 연락받지 않아 직접 찾아갔더니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해 결국 아픈 배를 부여잡고 무작정 이 병원으로 왔다며 의사, 정부 중에 누가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환자는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제주도의 유일한 국립병원인 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장 모(84·서귀포시) 씨는 어제 화장실에서 넘어져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큰 병원에 가서 고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 병원을 찾았지만, 전공의가 없어 수술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전문의들이 주로 전공의가 담당하던 입원 환자 관리 업무 등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외래환자를 볼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각 병원은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수술 일정을 연기하는 등 비상 진료체계로 전환했습니다.

제주대병원은 오늘부터 중증 환자만 응급실 진료를 허용하고 전문의를 당직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아울러 22일부터 수술실 총 12개 실 중 8개 실만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전체 전공의 중 80％ 이상이 사직서를 낸 인하대병원은 조만간 전문의를 중심으로 업무를 개편해 긴급진료체계를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인하대병원 내 일부 진료과는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시기를 예정일보다 늦춰달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강릉아산병원도 권역응급의료센터 역할과 정부의 응급의료체계 유지에 따라 중증 응급환자 중심으로 진료하고, 경증 환자는 전원을 권유할 방침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의료공백이 심각해질 경우를 대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합니다.

제주도는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위해 오늘부터 2인 1조로 4개 반을 편성해 수련병원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전시는 의사단체가 집단행동에 들어가면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도 의료 중단으로 환자 진료에 지장을 끼치는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충남도는 수술실·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 유지를 위해 응급의료기관 16곳과 응급실 운영 병원 5곳에 24시간 비상 진료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집단 휴진 때는 공공의료기관 평일 진료 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공휴일 비상 진료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복지부는 오늘 오후까지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를 확인한 뒤, 미복귀자에 대해서는 불이행확인서를 발부하고 추가로 강제이행 명령도 내릴 방침입니다.

강제이행 명령에도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의사면허 정지 등 조치하고 고발할 계획입니다.

지역의 의과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충남대 의대는 의학과 1∼4학년 학생들이 어제 수업을 거부한 데 이어 오늘 오후에 집단 휴학계를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건양대 관계자는 26일부터 등록금 납부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후에나 휴학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선대 의대는 신입생을 제외한 625명 재학생이 오늘 오전부터 학생대표를 통해 휴학계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대 의과대학은 3월 4일 개강에 앞서 임상실험 등 일부 수업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기했습니다.

전남대 의대 579명(신입생 제외) 재학생도 조선대와 마찬가지로 휴학계를 제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충주) 의전원 학생 120여 명 전원도 개강일이던 어제부터 오늘까지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 학교에 접수된 휴학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오늘 전국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이 시작되는 만큼 학교 측은 오늘 중 휴학계 제출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류희준 기자 yoohj@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