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회진 온 전공의, 내일부터 못 봐준다고"…환자들 '노심초사'
채혈실 '북새통'이던 서울대병원, 다소 한산한 모습도…"약 못 탈까봐 불안"
현장 떠난 전공의 관련 "흔쾌한 맘만은 아녔을 것" "증원 왜 반대하는지 의문"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반발로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일제히 사직한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소재 서울아산병원의 서관 로비는 평소와 다름없이 붐볐다. 새벽 KTX로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은 물론, 수도권 각지에서 온 환자·보호자들도 접수번호를 알리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순서를 애타게 기다렸다.
수련병원에서 각 진료과 전임의·교수를 도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턴·레지던트의 빈자리는 필수의료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응급의학과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현재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 불가합니다. 신속한 진료를 위해 인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심정지와 급성심근경색, 중증외상, 급성신경학적 이상 환자를 제외하고는 응급환자 수용이 불가하니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건국대병원 △경찰병원 등의 응급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이송해 달라며 양해를 구하는 문구도 함께였다. 안내된 병원 명단에는 이번 전공의 사직행렬에 동참한 삼성서울병원도 있었다.
인천에서 온 50대 임모씨는 "원래 어제(19일) 폐암에 걸린 70대 노모가 입원 예정이었는데, 아침에 오지 말라고 (아산병원에서) 전화가 왔었다"며 "(전공의 사직 여파로) '상황을 좀 정리해보고 다시 연락 준다'더니 1~2시간 후 다행히 다시 오라고 하더라. 지금은 수술실에 들어간 상태"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뉴스를 보시면서 어머니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저희도 눈치도 보고 가슴을 많이 졸였다"며 "'청천벽력'이었다가 '운이 좋은(lucky)' 상황이 된 건데, 일정이 연기·취소된 분들도 있을 테니 기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착잡해 했다.
임씨는 "어제 전공의 선생님이 (회진 때) 오셔서 '죄송하다. 제가 오늘 밤까지 케어하고 내일부터는 다른 분이 해주실 거다', '저보다 오래 (일)하신 분들이니 더 좋은 케어가 될 거다'라고 얘기하더라"며 "뭐랄까, 그 (사직)대열에 들어가는 분들도 흔쾌한 마음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빅5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총 2700여 명으로 전임의(펠로)와 교수 등을 합친 전체 의사인력(7042명)의 39%에 달한다. 전날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의 '블랙아웃'을 시작으로 전공의들이 현장을 빠져나간 5대 병원은 환자의 중증·응급도를 기준으로 수술 연기 및 진료일정 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임산부 이미연(33)씨는 당초 오는 21일 아산병원 산부인과 진료를 예약했다가 '의사 파업으로 진료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4월 초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예약)취소를 당하니 좀 당황스러웠다"며 "성모병원은 일단 예약이 된다고 해서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거주지인) 경기도에서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의료진이) 대학병원 진료를 보면 좋겠다고 해서 왔다. 이러다가 출산할 때 좀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 다른 환자들은 저보다 더 급한 분들도 많지 않겠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부연했다.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이 46%에 이르는 서울대병원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송모씨는 퇴원차 짐을 싸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송씨는 "파업 때문에 입·퇴원 서류 등 (보험회사 제출을 위해) 필요한 증빙서류를 떼지 못했다. 이번 주 금요일(23일) 또 항암치료 때문에 입원이 잡혀 있는데 그것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장 예정된 일정이 틀어지는 것보다 송씨를 더 괴롭히는 것은 이같은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송씨는 "(병원 측에서) 방송을 보고 진료 날짜를 '알아서' 생각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니 좀 그렇다"며 "지방에 살다 보니 KTX 등을 예약해야 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류마티스내과 진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은 안성덕(30)씨도 "보통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일반 약국에 없는 (처방)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이랑 처방전을 어떻게 받을지 등을 조율해야 하는데, 일정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불안하다. 서로 불편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디스크 치료를 위해 내원한 A(68)씨는 "원래 서울대병원은 피 뽑는 것만 해도 70~80명씩 기다리는 게 예사였는데, 오늘은 확실히 사람이 좀 적은 것 같다"면서도 "아직은 파업 여파를 잘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 보호자는 의사들이 왜 환자 진료를 거부하면서까지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보였다.
아내의 진료에 동행한 70대 김모씨는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취재진과 만나 "나이를 먹을수록 아픈 데가 많지 않나.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들어간다 하는데, 그럼 의사가 당연히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처가도 그렇고 의사들이 좀 있는데 전공의들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더라. 주70시간이 훨씬 넘게 일하는 것으로 안다"며 "전공의 수가 많아지면 (근무)여건이 좀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점검한 결과, 전체 전공의의 55% 가량인 6415명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 중 25%에 해당하는 1630명이 실제로 현장을 이탈했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이 상대적으로 미근무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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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박인·정진원·주보배 수습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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