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이광형 KAIST 총장, “AI분야에서 뒤처지면 사상적 식민지 될 것…막을 수 없다면 올라타야”
AI, 인류사에서 불의 발견과 버금가는 중대한 사안
AI시대, 휴머니즘 더욱 중요해져…인문학·예술·체육 교육 절실
현재가 불안하고 고민된다면, 10년 후 관점에서 보는 연습 해야
기초과학 R&D 예산, 국가의 힘이자 교육의 힘
2024년이 밝았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한해를 준비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한다. 새해 서점가에 트렌드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에듀플러스는 올해 초 신간 '미래의 기원'을 펴낸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이광형 KAIST 총장을 찾아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혜안을 구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 같죠? 그건 아닙니다. 저는 과학자이지만, 첨단기술이 발전할수록 앞으로 인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13일 대전 카이스트 총장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AI시대는 휴머니즘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인문학·예술·체육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의 기원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고 자연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총장은 “첨단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변화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현재가 불안하고 고민될수록 10년 후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간 '미래의 기원'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간단하게 책을 소개한다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원고를 썼다. 한 글자도 못 쓴 날도 많았다. 주말이나 저녁에 주로 글을 썼다. 5년간 책을 준비하면서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24시간 내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실도 출판 직전까지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작업했다.(웃음)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나서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저는 도구와 사상이 상호작용하면서 역사가 발전한다고 이야기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 보면, 인간은 환경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기본은 환경, 기술 등이지만 인간이 이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
▲빅뱅부터 AI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담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주제로 책의 큰 틀을 잡았다. 그 사례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가설을 찾고 증명해 나가다 보니 인간, 생명, 지구의 탄생, 빅뱅까지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래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역사가 곧 미래학이다. 역사를 찾아보면 현재 일어나는 일이 과거에도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유전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야기는 20만년 전이나 7000년 전이나 차이가 없다. 사랑, 배신, 증오, 전쟁 등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과거에도 똑같이 있었다.
▲미래의 기원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까지 지나온 역사를 보면 큰 변화의 파도는 거스를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 탐욕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은 자본·기술과 만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물리적인 잣대로 지금의 사상으로 새로운 변화를 판단하고 막아보려고 해 봤자 성공하기 어렵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새로운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인간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올 한해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보면 AI다. 국내로 보면 인구 감소 영향을 받기 시작한 '축소 사회'다. AI와 인구 감소는 교육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적극 대응해야 한다. 교육부에서 준비하는 AI 디지털교과서도 잘한 일이다. 다른 나라보다 AI 디지털교과서 분야에서 앞서 나가 전 세계에 수출해야 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미치는 교육 현장의 장·단점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면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교사와 친구 간 상호작용 부족에 따른 소외, 정신 붕괴 등의 문제점도 예상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항상 다른 이와 상호작용하며 의지하고 싶어한다. AI를 활용한 교육이 늘어나면 친구 관계가 소홀해지고, 교사와 학생의 유대 관계가 줄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이 외롭고 쓸쓸할 때 어디에 기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AI시대는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첨단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더욱 중요해진다. 인문학을 소홀히 여기면 인간이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된다.
▲2022년에 대학원에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를 신설했는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취업이 안 되고 부가가치가 없는 분야로 여긴다. 그러나 AI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어떤 학문보다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과 함께 예술 분야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카이스트는 학교 내 미술관을 짓고, 소프라노 조수미 씨를 교수로 모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새로운 시도가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현재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석사과정 입학 경쟁률은 4대 1로 높다. 인문계열 대학원 경쟁률이 이렇게 높은 곳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인문학자도 인문학 홀대를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역으로 대응해야 한다. 같은 환경에서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AI 발전이 실업, 격차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AI 발전으로 인한 미래를 어떻게 보나.
-조선시대 당시 외세 침략과 비슷하다. AI 기술 발전을 막을 수 없다면 올라타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시간이 있고, 우리는 그럴 능력을 갖췄다. 기술을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 무턱대고 새로운 기술을 나쁘다고만 보면 답이 없다. 기술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통제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AI가 발전하면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대신 AI 비즈니스를 만들면 또 다른 일자리가 생긴다. 우리가 걱정만 하고 손을 놓고 있으면 다른 나라에 AI 시장을 내주게 된다.
▲AI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AI 발전은 인류사에서 불의 발견과 버금간다. AI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AI는 경제 분야뿐 아니라 국방, 문화, 사상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AI 분야에서 뒤처지면 사상적 식민지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인간이 정신에 도전받은 적이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우리가 건전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AI 분야를 이끌어야 한다.
▲최근 기초과학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현장에 어려움이 있다는데.
-기초과학 R&D 예산 삭감 후 학생들을 만나면 연구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기초과학 R&D는 국가의 힘이자 교육의 힘이다.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디지털 교육이 강화되면서 학생들 문해력 저하가 문제로 떠오르는데.
-영상 위주로 정보를 얻게 되면 문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신문 읽기를 권하고 싶다. 신문은 알고리즘의 정보 추천 방식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정보가 골고루 담겨 있다. 제목만 읽어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정보만을 접한다면 편향된 사고 체계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신문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신문을 하나씩은 꼭 보라고 강조한다. 바쁘면 제목이라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면, 온라인에 편집해 놓은 신문을 보면 된다.
▲최근 카이스트 의대 신설이 무산됐다. 의사과학자 양성에 힘을 싣는 것은 변함이 없나.
-현재 우리나라 청년 실업자가 32만명이다. 청년이 일을 하지 못하는 사회가 건강할 수는 없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분야 외 새로운 산업을 키워야 한다. 바이오·의료 분야는 전 세계 반도체 분야보다 시장 규모가 3배 이상 크지만,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안 된다. 병원에 가면 대다수 의료 장비가 외국 제품이다. 팬데믹 당시 미국의 경제 상황은 어려웠지만, 의사과학자들이 백신을 개발해 바이오·의료 분야를 선도했다. 의사과학자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대표적 사례다. 의사들 가운데는 의대 정원을 늘릴 바엔 카이스트에 의대를 신설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카이스트의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한 사안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과거에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우대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다. 앞으로 대학도 수능 점수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뽑게 될 것이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것에 앞서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생각, 상상하기 위해 환경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식단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있다.
◆이광형 KAIST 총장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산업공학과 석사, 프랑스 INSA Lyon 전산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KAIST 전산학과·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국제협력처장, 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한다. 2021년 2월부터 KAIST 총장을 맡고 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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