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의사들도 “물러설 생각 없다”…한쪽 부러져야 끝날 것

김명지 기자 2024. 2. 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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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대 증원 협상 대상 아냐” 재차 강조
서울대 의대 정원 27년 제자리
1985년 대비 임상교수 3배 기초교수 2.5배 늘어
의사 파업 겪은 정부 “지금 밀리면 안된다” 절박감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전국 대학 병원에서 응급·당직 체계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전공의가 6000명 넘게 사직한 것으로 20일 나타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후 병원에 출근을 하지 않는 전공의도 1630명에 이른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집단 행동이다. 전날 전국 의대 학장들이 나서서 정부에 의대 증원 규모 재조정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증원 규모 조정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의사 단체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근무지 이탈자는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고, 나머지 병원에서는 이탈자가 없거나 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각 병원은 이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하지는 않았다.

복지부가 10개 수련 병원 현장을 점검한 결과 총 1091명(19일 오후 10시 기준)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가운데 757명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728명에 대해 새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기존에 이미 명령을 내린 103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831명이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셈이다.

복지부는 이날 50개 병원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해 근무지에 나타나지 않은 전공의에게는 다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환자들의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사례는 19일 오후 6시 현재 총 34건이었다. 수술 취소는 25건, 진료 예약 취소는 4건, 진료 거절은 3건, 입원 지연은 2건이었다.

의사 단체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날 전공의 단체는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고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고,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매일 오전 10시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하는 것과 동일하게 오는 21일부터 오후 2시 브리핑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수련병원 교수들로 구성된 대학병원에서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전공의 단체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는 없어 보인다.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의사 부족은 인정하지만 한번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너무 많다(의대교수)는 의견과,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의협)는 의견이다.전국의 의대 학장들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증원 규모를 재조정할 것을 요구했고, 서울대의대는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힌 분당서울대병원 정진행 교수도 복지부를 상대로 대화를 요구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1000명 정도로만 줄여도 의대 학장들이 받아들일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딱 잘랐다. 박민수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역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대 정원 확대가 아닌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다”면서도 “의대 증원 규모는 협상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대한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연준 가톨릭의대학장, 김정은 서울의대학장, 신 이사장, 이은직 연세의대학장./뉴스1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의료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의사 수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 맞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지금이라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더욱이 복지부는 지난 2020년 의약분업과, 2014년 비대면진료, 2020년 의대 증원 과정에서 의사 파업으로 민심이 악화되자 후퇴한 경험이 있다. 복지부 내부적으로 ‘이번에도 밀리면 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20여 년 동안 의사 파업에 밀린 기억 때문이다.

의사 단체들이 집단 반발로 승리한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전공의의 정부의 갈등을 부추긴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사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부를 상대로 져 본적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적법한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이익집단인 의사단체가 의대 증원을 두고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어느 한 쪽이 부러져야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수련병원이 고된 업무 환경에 있는 젊은 의사들을 격려하고 다독여 의료 현장을 지킬 수 있게 이끌기보다, 사직서 제출이나 파업을 응원하며 정부와 의사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 정 교수는 “2000명의 의대생을 교육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 없다”며 “발달한 정보통신(IT)기술을 활용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봤다.

박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과거 주요 의대 정원이 현행보다 많았던 만큼, 의대생 2000명을 늘려도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의 교수진은 1985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기초교수는 2.5배, 임상교수는 3배로 늘었다. 다음은 이날 정부 브리핑 일문일답이다.

-업무개시명령을 받았으나 복귀하지 않은 경우 행정절차는 어떻게 이뤄지나.

“사유를 감안해서 즉시 복귀한 것으로 판단되면 처벌은 없다. 반복 확인을 거쳐 장기간 이탈이 명확하게 되면 명령을 하게 된다. 지난 주말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한 전공의 103명 가운데 복귀하지 않은 3명에 대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행정처분은 면허정지 행정처분 등이 있을 수 있다.”

-사직서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는 전공의 가운데 빅5 소속이 몇 명인지 알 수 있나.

“개별통계는 당분간 내지 않기로 했다. 병원별로 어떤 곳은 98%의 수준에 이르는 사직서 제출이 있었고 또 어디는 굉장히 저조했다. 이런 숫자가 공개되면 내부에서 독려와 비판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업무개시명령을 기존에 받은 29명은 어떤 경우인가.

“정부는 지난 16일과 19일 두 차례 현장 점검을 나갔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의 16일 현장점검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받고 복귀한 100명 가운데 29명이 19일 현장 점검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왔다. 정부는 이들에게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근거 확인서를 징구했다.”

-10년 후 의사 수가 1만 명씩 부족하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온 건가.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는 2035년 9800명의 의사가 부족하고, KDI와 서울대 보고서는 1만 명이 넘는 숫자가 부족하다고 제시한다. 추계 과정을 보면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 의사,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의 차이까지 가정에 집어넣어 분석하고 있다. "

-조만간 의협과 공개토론이 예정돼 있다. 이 토론을 통해 절충안이 나올 수 있나.

“합리적인 토론으로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고 수용이 가능하다. 다만 의대 증원의 규모에 대한 변경 부분은 협상을 해서 숫자를 조정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상진료체계 대응 차원에서 나온 보상책은 한시적인 것인가.

“한시적인 것이 맞지만, 추후에 모든 사태가 잘 마무리되고 정리가 됐을 때 이런 수가들이 정말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는데 더 필요하다 그러면 제도하는 방안도 추후에 검토하도록 하겠다.”

-현장에 남아있는 의료진의 업무가 과중해진다는 지적이 있다.

“상급병원은 수술 진료와 함께 외래도 하고 있다. 상급병원에서 꼭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전체 환자의 절반 정도로 본다. 그 절반을 진료하는데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외부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이 상급병원의 중증 ·응급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겠다. 정부는 대형병원의 진료, 중증 ·응급 진료 기능을 유지하는 데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둔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규제를 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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