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능 검토 시작도 못한 차세대발사체...달 착륙도 재차 연기 위기
지난해 폭발한 터보펌프 시험 설비도 아직 복구 중
“달 착륙선 발사 일정까지 노란불”
달과 화성 같은 심우주 탐사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차세대발사체 개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을 책임질 체계종합기업 선정이 늦어지면서 성능과 사양, 개발이 필요한 기술을 결정하는 ‘체계 요구조건검토회의(System Requirement Review·SRR)’가 덩달아 지연됐다. 차세대발사체 상단용 터보펌프 시험 중에 폭발 사고가 발생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의 시험 설비도 아직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 초기부터 일정이 지연되면서 2030년 1차 발사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20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작년 12월 13일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위한 ‘체계 요구조건 검토회의(SRR·System Requirement Review)’를 개최했다. 차세대발사체는 기본적인 틀만 결정된 상태다. 2단 발사체로 1단은 100t급 엔진 5기, 2단은 10t급 엔진 2기가 들어간다. 구체적인 성능과 제원, 부품들의 기술 수준은 SRR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SRR은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사업의 요구조건을 파악하고 발사체의 제원·사양·설계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기술을 검토하고 사업 목적을 충족하는 방안을 도출하는 연구개발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다. 항우연은 SRR의 결과를 토대로 체계 운용 방법과 절차 등을 결정하는 ‘체계 설계 검토회의(System Design Review·SDR)’를 올해 말쯤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작년 12월에 열린 SRR 회의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차세대발사체 개발 일정상 작년 안에 SRR을 열어야 했기 때문에 계속 미루다 시한을 넘기기 직전인 12월 중순에야 소규모로 SRR을 열었다고 한다. 우주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SRR을 열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차원이었을 뿐 차세대발사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4월이나 5월쯤 SRR을 다시 개최해 차세대발사체의 구체적인 제원을 결정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보다 반년이 늦어지는 셈이다.
차세대발사체 SRR이 지연된 건 체계종합기업 선정 절차가 늦어진 탓이다. 체계종합기업이 고도화 사업부터 참여하는 누리호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과 달리,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은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체계종합기업이 항우연과 협력한다. 사업 취지상 SRR에 체계종합기업이 참석해 시스템 설계에 필요한 기술을 검토해야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10월에 차세대발사체 체계종합기업 선정이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며 조달청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지체됐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입찰은 지난 19일 시작돼 21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2월 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거쳐 3월 중 최종 사업자가 결정된다. 현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2파전 양상이다.
박창수 항우연 차세대발사체개발사업단장은 “차세대 발사체는 체계종합기업과 공동 설계하는 부분이 포함돼 있어 선정 이후 올해 4월쯤 또 한 번 SRR을 계획하고 있다”며 “(SRR 진행하기 위해) 체계종합기업을 빠르게 선정하고 싶었지만, 중앙조달 방식을 채택하면서 여러 가지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아져 늦어졌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주항공분야 전문가는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시작부터 엉켜버린 상태”라며 “항우연과 공동 개발한 체계종합기업이나 외부 평가 위원도 갖추지 않고 개최한 SRR을 SRR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과기정통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차세대발사체 개발 지연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앞서 누리호는 항우연과 한국연구재단이 체계종합기업 선정을 맡았지만, 차세대발사체는 공정성을 이유로 조달청에 책임을 넘겼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우주개발 선도국과 이미 10년 이상 기술 격차가 난 상황에서 수월성을 추구해도 모자랄 판에 공정성 시비 논란을 피하려고 돌다리까지 두드리는 형국이다. 한 우주항공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발사체는 2030년 1차 발사가 목표인데 6년 뒤에 발사할 새로운 발사체의 구체적인 제원과 성능, 기술 수준도 아직 정하지 못한 게 말이 되나 싶다”며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하는데 우주항공청 개청을 앞두고 다들 책임지기 싫어서 뒤로 물러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작년 1월 폭발사고가 발생한 나로우주센터 터보펌프 시험 시설도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31일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차세대 발사체 상단용 10t급 터보펌프 시험 중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터보펌프 시험은 차세대 발사체 사업이 시작되기 전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선행과제로 이뤄진 것이다.
당시 사고로 시험 시설 내부가 전소됐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터보펌프 시험 설비는 다음 달 중으로 복구를 마무리한다. 이후 시운전을 거쳐 6월부터는 시험을 재개할 계획이다. 다만 내년에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에 사용될 엔진을 납품해야 해 차세대 발사체 터보펌프 관련 시험은 내년 초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차세대 발사체 개발과 관련해 이 시험 설비를 활용할 계획이 없었다며 차세대 발사체 개발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항우연이 예측한 터보펌프 시험 설비 복구 기간은 1년 1개월이다. 사고 발생 당시에는 복구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정밀안전진단으로 소실 규모를 측정하고 복구공사 입찰 과정을 거치면서 예상 기간이 늘었다. 시험 설비를 복원하는 동안 실제 연료가 아닌 안전한 물질로 터보펌프 성능을 시험하는 ‘상사시험’으로 대체했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상사시험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우주항공 업계에서는 그런 논리면 애초에 시험시설 자체가 왜 필요했느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한 우주 분야 연구자는 “체계에 대한 검토와 시험이 늦어지면 당연히 목표로 한 차세대 발사체 개발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우주 기술력으로 달 착륙선을 보내는 차세대 발사체는 큰 도전인데, 시작부터 일정이 계속 지연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체계종합기업 선정 이후 SRR이 열려도 차세대발사체 개발 일정에는 차질이 없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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