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살리겠다고 연예계 생활” 방실이 동생이 말한 그의 삶
가수 방실이(본명 방영순)가 20일 61세의 나이로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뇌경색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방실이를 극진히 챙기던 동생 방화섭씨는 생전 “누나는 집안의 버팀목이었다”고 했다.
방실이는 2022년 6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15년이 되던 때였다. 동생 화섭씨는 “2007년 6월 7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며 “그때 누나가 쓰러졌다”고 했다. 당시 방실이는 전신은 물론, 성대까지 마비가 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방송에 출연했을 때 방실이는 예전처럼 우렁찬 목소리는 아니지만 말은 할 수 있었고, 한쪽 팔 일부를 사용해 스스로 밥을 먹었다.
화섭씨는 방실이가 머무는 요양원에 가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먼저 들렀다. 투병 중이던 방실이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고, 산소에도 못 와봤다고 했다.
화섭씨는 “아버지가 진짜 누나 하면 ‘최고 최고’ 그랬다”며 “아들보다 누나에게 많이 의지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누나가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줬다”며 “그래서 결혼도 안 했고, 누나가 집안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연예계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방실이의 아버지는 어딜 가면 ‘딸이 방실이다’ ‘내가 방실이 아버지다’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화섭씨는 “아버지가 강화도에서 누나보다 더 유명인이었다”며 “아버지는 ‘딸 덕분에 내가 행복하게 산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방실이의 투병으로 이러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섭씨는 “자식이 죽진 않았어도 먼저 몸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라며 “어머니가 속병을 많이 앓으셨다”고 했다. 이어 “엄마는 속으로 힘든 걸 다 받아들이셨는데, 아버지는 엄마가 가만히 있으면 ‘딸이 아픈데 왜 아무 얘기도 안 하냐’고 그랬다”며 “결국 어머니는 여든 딱 되신 해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방실이는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과 동생을 향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저는 불효녀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라며 눈물을 흘렸다. 화섭씨는 “누나 덕분에 아버지 어머니 편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며 위로했다.
방실이는 동생을 향해서는 “너무 고맙다”며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지, 너 없으면 못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화섭씨는 “그만큼 누나한테 많이 받았다”면서 “그래서가 아니라, 끝까지 돌보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내도 다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1년여가 흐른 후 방실이는 안타깝게도 눈을 감았다. 1963년생 고인은 1985년 여성 3인조 서울시스터즈를 결성해 ‘첫차’, ‘뱃고동’, ‘청춘열차’ 등을 히트시켰다. 서울시스터즈 해체 후 1990년 솔로로 전향해 ‘서울 탱고’, ‘여자의 마음’ 등을 발표해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에도 꾸준히 신곡을 내고 활동하던 중 2007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17년간 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인의 빈소는 인천 강화군 참사랑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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