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넘어지고 "일하다 다쳐"…줄줄 샌 산재보험, 113억 부정수급
산재보험 부정 수급이 천태만상이다. 노무법인이 관여한 조직적 위법 정황까지 확인됐다. 고용노동부가 산재보험 특정감사와 노무법인 등을 점검한 결과 산재보험 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됐다. 집에서 넘어졌지만 일터에서 다친 것으로 처리하는 등 현재까지 산재보험 부정수급 적발액만 113억2500만원에 달하고 조사가 진행중인 의심 건수만 4900여건이다. 위법 정황이 포착된 노무법인과 변호사사무소만 11개소다.
근로자 입증 부담을 완화하고 쉽고 빠르게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의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게 혼란을 부추긴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산재보상 인정 기준인 '질병 추정의 원칙'이 문제다. 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법적 위임 정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추징 원칙이 운영되다보니 현장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장기 환자를 양산하는 요양 제도가 대표적 문제로 꼽힌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가 전체 요양환자의 절반 수준(48%)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용부는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의 부재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제도 이용 △저조한 집중재활치료 실적 △민간산재병원 관리 부적정 등을 장기요양환자 유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목통증인 경추염좌의 경우 건강보험 대비 치료 기간이 2.5배 더 길고 진료비는 3.7배 더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어 사실상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되고 있어 장기간 요양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승인 요건에 구체적 판단 기준과 횟수 제한이 없다는 점도 장기요양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한 재해자의 경우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전문치료를 이유로 57회, 생활근거지 변경을 이유로 7회 등 의료기관을 총 64회 변경하며 4년 이상 요양을 하고 있다.
시설, 인력, 장비 등 요건만 갖추면 쉽게 지정되는 민간산재병원을 형식적으로 관리하는것도 장기요양의 원인으로 꼽힌다.
소음성 난청도 산재 보험의 주된 이슈다. 고용부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 산재 신청자 중 60대 이상 고령층 재해자가 93%를 차지한다. 신청 건수는 지난해 1만4273건으로 2017년 2239건 대비 6.4배 폭증했다. 보상급여액도 1818억원으로 5.2배(347억원) 급증했다.
소음성 난청은 판례 등에 따라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고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적절한 보상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고령화 등에 따른 수급자 증가로 산재보험 연금부채가 55조원에 달한다. 산재로 어려운 형편에 처한 근로자를 제대로 지원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하나 일부 과잉 보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장관은 "뇌혈관질환으로 재해를 당한 사람이 현재 78세의 나이에도 월 675만원의 장해급여를 수급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고 이 경우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으면 국민연금도 중복해서 수급이 가능하다"며 "지속 가능한 산재보험 운영을 위해서는 연령 특성, 일반근로자 등과의 형평 및 노후보장으로서 타 사회보험과의 연계 등을 고려해 합리적 보상이 되도록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발족한 '산재보상 제도개선 TF'를 통해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사장이 직접 단장을 맡는 '부정수급 근절 특별 TF' 를 구성해 무기한 가동한다. 박종길 이사장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와 사중손실을 동시에 해소하고 단순보상 보다는 재활을 통하여 직장복귀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회 서비스로서의 산재보험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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