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망명 러 조종사, 스페인서 의문사…어른거리는 푸틴의 그림자?
우크라 정보총국 “정확한 사인 알지 못해”
가디언 “비난의 화살, 푸틴에게 향할 것”
지난해 8월 전쟁 도중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군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가 스페인에서 총에 맞아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외신들은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의문사 배후로 의심받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은 “쿠즈미노프가 스페인에서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에 러시아와 스페인 매체는 쿠즈미노프가 지난 13일 스페인 알리칸테 한 마을 아파트 주차장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스페인 경찰은 처음엔 일반적인 갱단 관련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사망자가 쿠즈미노프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우크라이나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자세한 사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을 아꼈다.
쿠즈미노프는 러시아에서 주로 수호이(Su) 전투기를 몰았던 조종사로, 지난해 8월 러시아군 전투기 부품을 실은 헬리콥터를 타고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전투기 조종사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첫 사례였다.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당시 쿠즈미노프를 6개월 이상 설득해 망명을 주선했고, 그의 가족들도 미리 러시아를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9월엔 쿠즈미노프가 우크라이나 공군에 합류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그가 어떤 이유에서 스페인에 머물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스페인 국영 EFE통신은 “쿠즈미노프가 사망 당시 스페인에서 우크라이나 여권을 지닌 채 가짜 신분으로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브다는 소식통을 인용해 “쿠즈미노프의 전 여자친구가 그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며 “여자친구는 쿠즈미노프 초대를 받고 그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나발니가 지난 16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사망한 데 이어 쿠즈미노프까지 숨진 채 발견되자 외신들은 러시아 크렘린궁을 향한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가디언은 “비난의 화살은 크렘린궁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러시아 정부는 지금까지 유럽 전역에서 일련의 암살을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관리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쿠즈미노프 사망은 그의 신분을 세탁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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