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이 병원 알선하고 보상금 30% 수수… '산재 브로커' 11곳 수사의뢰

정지용 2024. 2.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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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성 난청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기 위해 노무법인을 찾은 A씨는 노무법인이 제공한 차를 타고 노무법인이 소개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산재 승인을 받은 A씨가 노무법인에 수수료로 지급한 돈은 보상금 4,800만 원의 30%인 1,500만 원에 달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B씨는 난청 등의 질환을 산재로 신청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소 직원만 만났다.

C씨의 경우 산재가 인정된 후 수수료 2,000만 원을 노무법인이 아닌 상담을 맡았던 직원에게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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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 발표>
486건 113억대 부정수급 확인
무자격 브로커 개입 정황도 적발
고용부 "산재 보상제도 대폭 개편"
노동계 “실체 없는 카르텔 몰이” 반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 감사를 통해 부정수급 의심 사례 883건을 조사해 486건의 부정수급(약 113억2,500만 원) 사례를 밝혀냈다. 연합뉴스

소음성 난청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기 위해 노무법인을 찾은 A씨는 노무법인이 제공한 차를 타고 노무법인이 소개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A씨가 “집 근처 병원이 많은데 왜 그렇게 멀리 가냐”라고 묻자 “우리와 거래하는 병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산재 승인을 받은 A씨가 노무법인에 수수료로 지급한 돈은 보상금 4,800만 원의 30%인 1,500만 원에 달했다.

고용노동부가 20일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및 ‘노무법인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밝힌 위법 의심 사례다. 노무법인이 노동자에게 특정 병원을 알선한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고, 수수료도 비정상적으로 크다. 고용부가 “산재보험제도의 허점이 악용되고 있다”며 대대적 제도 개편을 공언한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일부 사례를 부풀려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B씨는 난청 등의 질환을 산재로 신청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소 직원만 만났다. 담당 변호사는 산재소송 과정에서 한 번 봤을 뿐, 산재 상담 및 신청 과정은 사무소 직원이 전담했다. C씨의 경우 산재가 인정된 후 수수료 2,000만 원을 노무법인이 아닌 상담을 맡았던 직원에게 지급했다. 변호사나 노무사가 아니라 무자격 '산재 브로커'가 산재 업무 처리를 한 정황(명의대여)이 의심되는 사례다.

고용부는 강경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감사 결과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곳을 처음으로 수사 의뢰했다”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징계, 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의 엄중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했다.

고용부는 산재보험 부정수급 의심 사례 883건 가운데 486건(55%)에서 총 113억2,500만 원 상당의 부정수급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제도의 허점 등으로 산재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산재보상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고용부는 산재 인정 기준을 보다 까다롭게 해 속칭 '나이롱환자'(장기요양환자)를 줄이고, 방만한 병원 운영을 통제하는 방법을 논의할 계획이다.

노동계에서는 산재 제도 개편의 명분이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강조했던 '산재 카르텔'의 실체가 규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부정수급은 철저히 조사하고 걸러내는 것이 맞지만 과연 이 정도를 가지고 산재 카르텔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극히 일부 부정수급 사례로 산재 환자 대부분을 실체 없는 카르텔로 몰고 있다”고 했다. 고용부는 “카르텔로 의심되는 정황을 수사기관에 전달했고, 수사 과정에서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재 제도를 흔드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터에서는 산재를 당하고도 회사 눈치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산재 입증 자체도 노동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치료도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강제로 산재 인정 치료가 종결되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며 “실체도 없는 산재 카르텔로 산재 제도를 개악하려는 움직임을 중단하라"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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