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심정지 왔는데 수술 밀릴 수도"…공공병원도 직격타

고양(경기)=최지은 기자, 서울=오석진 기자, 김지은 기자 2024. 2. 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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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일 오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1층 수납 창구 입원 수속 대기 현황에 0명이 찍혀있다. 창구 직원은 "입원 대기 인원이 많이 밀려있어서 오늘 입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선번호로 전화해서 자리가 나는지 계속 확인하셔야 한다"고 안내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이날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 가운데 공공의료기관도 전공의 파업의 여파를 맞았다./사진=최지은 기자


"원래 모레까지 입원해야 하는데 의사가 없다고 퇴원하라네요."

20일 오전 11시쯤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1층에서 만난 이모씨(68)는 짜증 섞인 투로 이같이 말했다. 간암 투병 중으로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이씨는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집에 가라니 이게 맞나 싶다"며 "이달 말쯤 또 입원이 예정돼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이날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 가운데 공공의료기관도 전공의 파업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았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암센터도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파업에 참여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같은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70명 중 59명이 업무를 중단했다. 서울대병원 소속 51명, 국립암센터 소속 8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주말 일부 환자에게 암 수술 연기를 안내하고 수술이 취소된 환자를 퇴원 조치했다. 입원한 환자 수는 평소 대비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실제 이날 예정된 수술 3건이 취소됐다.

지속적인 치료가 중요한 암 환자들은 파업으로 인해 진료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폐암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인 김모씨(75)는 "곧 퇴원하고 조만간 다시 입원해야 하는데 파업이 장기화 돼서 입원 일정이 미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방암 시술을 받기 위해 내원했다는 이모씨(43)는 "파업 기사를 보고 혹여나 시술 일정이 밀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며 "다만 곧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수술 일정이 밀릴까 불안하다. 수술만 밀리는 게 아니라 다른 일정들을 모두 미뤄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신속 대응팀을 조직하고 간호사를 추가 투입해 전공의 업무 중 가능한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며 "빠른 대책 마련으로 진료와 수술에 차질이 없도록 대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심장 수술인데..." 서울의료원·국립중앙의료원도 타격

20일 오전 10시20분 서울의료원 내과가 환자들로붐비고 있다./사진=오석진 기자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도 전공의들의 파업 공백을 메꾸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서울의료원에 따르면 병원 소속 전공의 8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지난 1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울의료원 1층 외래 접수처는 오전 8시부터 대기하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특히 전공의 파업으로 대기 시간이 더 길어져 환자들의 불만을 샀다. 이날 진료를 위해 3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한 환자는 "원래 다니던 서울아산병원은 외래 진료 예약이 안 된다고 해 서울의료원에 왔는데 여기도 대기가 길다"며 "의사가 없어서 진료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지만 입원이 미뤄진 환자도 있었다. 경기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고모씨(78)는 "원래 13일에 입원했어야 하는데 26일로 밀렸다가 또다시 27일로 연기됐다"며 "아침 일찍부터 진료받으러 왔는데 너무 당황스럽다. 다리 혈관이 막혀 걷지도 못하고 너무 아프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은 100여명의 전공의 중 36명이 집단 사직했다. 병원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전문의들을 2월까지 당직으로 세우기로 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당장 수술이나 입원이 지연되거나 취소된 건 없지만 파업이 2월 이후로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사직 소식에 수술을 앞둔 보호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중환자실 앞에서 만난 50대 이모씨는 "전날 아버지에게 심정지가 와서 급하게 수술을 잡았다"며 "오늘 3시에 하기로 했는데 전공의 파업 때문에 수술이 밀릴 수 있다고 하더라.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사를 받아 다른 병원 가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19일 전공의 6415명 사직서 제출…복지부 '업무개시명령' 내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과 각 병원 전공의 대표 및 대의원들이 20일 낮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지난 19일 밤 11시 기준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낸 사직서는 모두 수리되지 않았다. 사직서 제출자의 25%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복지부는 업무 개시 명령을 한 전공의를 제외한 남은 728명에 대해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정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각 의료기관에서 필수 진료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하기로 했다. 입원환자 비상 진료 정책지원금을 신설해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제공한다.

입원전담전문의 업무 범위를 확대해 당초 허용된 병동이 아닌 다른 병동의 입원환자까지 진료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한다. 인턴이 필수 진료과에서 수련 중 응급실·중환자실에 투입되더라도 해당 기간을 필수 진료과 수련으로 인정하는 등 수련 이수 기준도 완화할 예정이다.

고양(경기)=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서울=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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