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공의 집단사직 첫날…"환자에 데모하나" 빅5 곳곳 분통(종합)

계승현 2024. 2. 20. 14: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기다려"…외래·응급 대기 길어져 환자·가족 애태워
의료대란 현실화에 우려…"정부와 의료계 대치 해소하고 협상하길"
국군수도병원 민간 개방 (성남=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가시화하면서 정부가 군 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20일 오후 의료진들이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민간인 환자를 옮기고 있다. 2024.2.20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김정진 이미령 안정훈 기자 = 20일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병원을 빠져나간 가운데 응급의료의 핵심인 서울 '빅5' 대형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찰됐다.

병원 측에서 수술·진료 일정을 줄이기는 했지만 외래 및 응급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환자와 가족이 애를 태웠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은 평소보다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외래진료를 보러 왔다는 임모(54)씨는 "진료가 취소되거나 날짜가 밀리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40∼50분가량 더 기다렸다"며 "진료를 봐주시는 교수님도 평소보다 힘들어 보이셨다"고 말했다.

호흡기내과 앞에서 외래 진료를 기다리던 김광덕(71)씨도 "평소엔 1분도 지체되지 않고 예약시간에 딱 맞춰 들어갔는데 오늘은 한 30분 정도 지연된다고 하더라"라며 "강원도 태백에서 3시간 넘게 걸려 왔는데 오는 내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혹시 변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상당수 전공의가 사직한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병원 안과병원에서는 초진을 담당하던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해당 업무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한 환자는 병원 접수처에 "환자를 2시간을 대기실에 앉아두게 하면 어떡하냐"며 "데모를 하면 밖에서 해야지, 환자한테 데모를 하면 어떡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산부인과 병동 접수처에는 진료 지연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전자식 안내판에는 오후 12시 40분을 기준으로 대기시간 100분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붐비는 대학병원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2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천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천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2024.2.20 nowwego@yna.co.kr

서초구 성모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70대 변모씨는 "남편의 동생이 암 진단을 받고 포항에서 급히 올라왔는데, 어제 오후 3시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검사는 다 받았고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치료가 빨리빨리 진행이 안 돼서 너무 많이 기다리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아이의 뇌 MRI(자기공명영상진단기) 촬영을 위해 성모병원을 찾은 안모(43)씨는 "원래 MRI 대기실은 사람이 가득 차 있는데, 병원 곳곳에 의사들 손이 부족하니까 여기가 더 붐비는 것 같다"며 "정부와 의사들이 잘 화해해서 아픈 사람들 더 고생하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당장 수술이 급하지 않은 입원 환자들은 퇴원·전원 조치됐다.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퇴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이 보호자는 "파업 때문에 정상적 진료가 힘들어 인근 다른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다음 달 다시 (아산병원에)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폐암이 재발해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손모(68)씨는 "어제 저녁에 젊은 주치의가 오더니 '저 내일 없어요'라고 얘기했다. '데모하러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하더라"라며 "나는 내일 항암제 맞고 퇴원해서 크게 불만은 없지만 다른 환자들은 병원을 옮기라는 안내를 받았다더라"고 말했다.

상황 악화에 따른 의료대란을 우려하면서 하루빨리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봉합해 극단적 상황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환자와 가족도 많았다.

방광암으로 지난주 응급실에 들어와 입원했다는 한 환자의 가족은 "간호사들이 '전공의가 파업해서 교수들이 오더를 내려도 (조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국가적으로는 의사들을 늘리는 게 맞지 않겠느냐"면서도 "당장이 급한 환자 입장에서는 일단 (의대 증원 정책을) 철회를 하든 어쨌든 이런 상황은 해소를 하고 협상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진료 지연이 현실화하면서 전공의 집단행동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도 있었다. 재활을 위해 약 한 달째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있다는 A(60)씨는 "아직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다"면서도 "의사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의대 증원이 정당하게 느껴지는데,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천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전공의 없는 병원' 현실화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2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전공의 없는' 병원이 현실화했다. 이날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인해 가동되는 비상진료체계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대략 '2∼3주 정도'다. 2024.2.20 nowwego@yna.co.kr

key@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