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로 사람 죽기도 한다···쿠팡 사건, 시사점 커”

조해람 기자 2024. 2. 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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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에 논란 확산
“블랙리스트, 불안정 고용 유지 수단”
쿠팡의 이른바 ‘PNG 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과 타 업종 블랙리스트 경험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규탄 인권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해람 기자

“쟤 ‘블랙’에 올려, 그 한마디로 사람의 개인정보가 올라가는 게 쿠팡의 인사평가 시스템인가요? 블랙리스트 사유를 보면 자기계발이나 육아, 군입대가 있는데 이게 객관적인 인사평가입니까?”(정성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장)

쿠팡이 물류센터 노동자 1만6450명을 대상으로 ‘취업 대상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MBC 보도로 불거진 뒤 쿠팡 노동자들은 물론, 다른 업종에서 블랙리스트를 겪은 이들도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양한 업종의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를 공유했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하청노동자인 안준호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조선소 하청업체에 취업을 못 하거나, 취업방해 때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례도 있을 정도”라며 “조선 3사(한화오션·삼성중공업·HD현대중공업)가 블랙리스트처럼 서로 노동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당사자인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시각예술비평가)는 “쿠팡 블랙리스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다르지 않다”며 “신자유주의에 잠식된 국가의 현대판 제노사이드”라고 했다.

쿠팡의 ‘PNG 리스트’에 오른 정 지회장은 “싸고 빠르게 배송하고, 싸게 팔아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고 블랙리스트로 현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불안정고용을 유지하는 게 쿠팡의 성장비결”이라고 했다.

쿠팡 잠입취재를 했다가 리스트에 오른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는 “쿠팡은 강력한 법무팀과 김앤장 등 대형로펌 출신 임원을 둔 법꾸라지”라며 “쉴 곳도 없고 먼지가 가득하고,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들고 야간노동자의 기본시급을 깎는데도 쿠팡은 ‘불법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고용규모 3위인 유통기업에게 우리가 바라는 게 합법의 최저선일까”라고 했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 와중에 이 같은 ‘블랙리스트’ 의혹이 터진 것은 위험신호라는 지적도 나왔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활동가는 “쿠팡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의 수가 (다른 블랙리스트보다) 많은 건 근로계약이 불안정한 플랫폼노동자들이기 때문”이라며 “플랫폼노동이 확장되고 미세한 노동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게 블랙리스트로 관리된다고 생각해보라. 매우 시사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쿠팡이 폭행·도난 등으로 물의를 빚은 노동자들의 사례를 공개한 데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정 지회장은 “일부 극단적인 사례로 블랙리스트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1만6450명의 블랙리스트 사유를 전부 설명해보라”고 했다. 홍 기자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잠입취재 당시) 정말 열심히 일한 나는 그럼 왜 들어가 있느냐”라고 했다.

쿠팡 측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쿠팡은 이날 “(물류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인사평가를 하고 있음에도, MBC는 마치 매니저의 사적인 감정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당사자들의 허위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며 “자발적 퇴사자 명단도 ‘블랙리스트’라고 허위보도했다”고 밝혔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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