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원래 막장이라는 건 '내남결' 제작진의 핑계에 불과하다
초반으로 다시 회귀는 안될까, ‘내남결’의 요령부득 막장의 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이, 아니야. 백수 될 뻔한 거 구해줘서 내가 고맙지, 뭐. 그, 레시피 수정안도 곧 보낼게. 좀 어렵네."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백은호(이기광)가 강지원(박민영)을 찾아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초반 그가 썼던 경상도 사투리가 사라졌다. 드라마가 방영된 후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에 올라온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으러 왔어예'에서 잘못된 경상도 사투리의 사례로 나왔던 지적이 큰 화제를 일으켰던 게 영향을 줬던 걸까.
그저 해프닝으로도 보이지만, 사실 이 일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어째서 초반의 그 흥미진진함을 갈수록 잃어버리고 후반부에는 개연성을 아예 던져버린 채 막장으로 폭주하게 됐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의 사투리는 그저 활용하기 위해 갖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정서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를 표현하는 연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작가와 연출자의 세심한 고려가 담긴다. 또한 사투리는 같은 대사를 담아도 그걸 담는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자칫 잘못 하면 지역 비하 같은 논란까지 만들 수 있는 사안이다. 절대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어설픈 사투리를 그대로 드라마에 담아내고 지적받았던 상황도 그렇지만 갑자기 언제 사투리를 썼냐는 듯 서울 말씨로 은근슬쩍 돌아온 상황도 그리 적절한 선택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 해프닝처럼 보이는 사투리와 관련된 즉흥적인 선택들이 마치 이 드라마가 후반부로 지나오며 폭주한 이야기들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 드라마의 막장이 당장 갈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면 갖가지 자극적인 클리셰를 가져다 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리는 식의 전개가 불러온 결과처럼 여겨져서다.
절친과 남편의 불륜. 주인공의 불치병.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이 오히려 저 불륜을 저지른 이들에게 살해되는 상황. 그래서 펼쳐지는 복수의 서사.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이처럼 흔한 막장드라마의 공식들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초반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그 복수 서사를 '회귀물'이라는 색다른 틀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 10년 전으로 회귀해 정해진 비극을 피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서사가 오피스물과 겹쳐지며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개됐다.
하지만 강지원의 목표대로 박민환(이이경)과 정수민(송하윤)이 결혼을 하게 된 후 드라마는 갈 길을 잃었다. 갑자기 유지혁(나인우)의 전약혼녀인 오유라(보아)가 등장해 심지어 살인을 사주하는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전개됐다. 강지원이 일부러 박민환을 유혹하는 척 해 불륜의 뉘앙스를 풍기고 유지혁이 그 사실을 들어 은근히 정수민을 자극함으로써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너무나 작위적이다. 강지원과 유지혁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대로 박민환과 정수민이 움직이는 모습은 그래서 작가의 손에 조종되는 꼭두각시 모양이다.
물론 이런 스토리가 원작 그대로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막장으로 폭주하게 된 드라마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원작을 가져오더라도 드라마적 변용에 의해 개연성이 없다 여겨진다면 당연히 재해석하는 게 리메이크의 본질이다. 왜 리메이크라고 부르겠는가. 웹툰과 드라마 사이에 확연한 장르적 차이가 있어 그 장르에 맞는 변용이 필요하다는 건 이미 무수한 리메이크들의 시행착오들이 보여줬던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이상한 드라마가 됐다. 먼저 주인공의 매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다. 로코 퀸으로 불렸던 박민영은 뒤로 갈수록 복수와 사이다에 경도된 캐릭터로 연민이나 호감이 빠져버렸고, 나인우는 인간적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의 AI 같은 모습으로 드라마 속에서 현대판 왕자님 역할을 기능하는 모습에 머물렀다. 그나마 이들 배우들이 얻은 것이라면 이제 막장 연기도 어느 정도는 어울린다는 평가일텐데 그것이 과연 얻은 것인지 잃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박민환, 정수민 같은 악역 연기를 한 이이경, 송하윤의 연기자로서의 매력이 오히려 부각됐다. 이이경은 코믹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 악역(그것도 코믹하게 타격감이 좋은 악역)으로도 확실한 존재감을 남겼고, 송하윤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강렬한 악역 연기를 보여줬다. 이렇게 된 건 이 작품이 어떤 힘으로 끝까지 흘러왔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너무나 얄밉고 극악한 악역들이 한껏 고구마를 만들어내고 또 그들이 시원시원하게 망가지는 모습으로 사이다를 주면서 드라마가 극성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사투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회귀물이라는 장르 역시 그저 필요에 의해 활용되다 버려진 느낌이다. 이 장르가 갖고 있는 '이생망' 정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진지한 접근조차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반부에 오면 회귀물 대신 막장의 공식을 '필요에 의해' 가져다 쓴 것 같은 지리멸렬한 전개가 펼쳐졌다. 그래서 얻은 건 11%(닐슨 코리아)가 넘는 시청률이지만, 본래 막장은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라는 기본적 틀 자체를 깨버리는 것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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