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골반 수술 받아야 하는데…" 제주 의료공백 현실화
"오늘 아침 정형외과 선생님이 파업하셨어요. 다른 병원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20일 제주 유일의 국립대학병원인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간호사가 접수창구 앞에서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던 장덕보(85) 할아버지와 보호자들에게 이같이 안내했다. 29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장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넘어져 골반을 크게 다쳤다. 수술을 위해 병원에 온 것이다.
그의 아내 김정희(82) 할머니는 "어제 남편이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골반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왔다. '의사 파업으로 수술 못 받으면 어쩌지'하고 밤새 걱정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부모를 모시고 온 아들 장태훈(52)씨는 "의료 파업으로 오늘 아버지께서 진료 받으실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병원에 왔다. 수술이 안 된다고 해서 당황스럽다. 아버지께서 이 병원에서 30년간 치료받으셔서 진료 기록이 다 있다. 다른 병원 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사 인력 확대 방안에 반발해 도내 전공의들도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는 가운데 우려했던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처 전문의가 투입되지 않은 전공에서만 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의사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모든 전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 곳곳에는 '금일부터 원내 다수의 전공의/수련의 부재로 인해 응급실은 비상진료체계로 운영됩니다' '본원 응급센터에서는 중증응급환자에 대해 의료공백에 의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안내 문구가 게시돼 있다.
입원 병동에서도 일부 환자들과 보호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병원 로비에서는 의사 파업으로 진료 차질을 우려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얘기 나누는 모습도 엿보였다.
뇌경색으로 치료받고 이제 막 재활치료에 들어간 조모(50)씨는 "어제 치료 끝나고 병동으로 옮겼는데, 의사가 오늘 사직서 제출했다고 해서 다른 병원으로 안내해준다고 한다. 정말 황당하다.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양보하면 될 텐데, 양측이 강성으로 대응해서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동 앞 로비에서 만난 김영준(80) 할아버지는 2~3일 안에 병실을 빼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막막해했다. 허리를 크게 다친 아내 오임춘(80) 할머니를 옮길 병원이 당장 마땅치 않아서다.
김 할아버지는 "아내가 말은 하는데 움직이질 못한다. 누운 채로 대소변을 보고 있다. 오늘 아침에 당장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 방법이 없다. 병원 측에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안 된다'고 해도 그래도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도 돈은 받겠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제주대학교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공백을 전문의를 투입해서 메우려고 한다. 당직 비상체제로 들어갈 거다. 수술실도 축소에서 중증환자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도내 전공의 141명 가운데 73%인 103명이 집단 휴진에 동참했다. 또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53명이다. 집단 휴진에 동참한 전공의는 제주대학교병원이 73명으로 가장 많고, 한라병원 20명, 서귀포의료원·한마음병원·중앙병원 각 3명, 한국병원 1명이다.
제주도는 전공의 사직과 집단 휴진이 확산됨에 따라 24시간 비상진료대책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도 119 비상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의료공백 최소화에 나섰다. 119구급현장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중심으로 우선 이송하되 병원 이송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응급환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이송병원 선정을 전담하기로 했다.
구급대 중증도 분류에 따라 응급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대형병원으로, 비응급환자는 지역 응급의료센터나 응급의료기관 등으로 이송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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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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