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현실로…시민들 "수술 못 받으면 어떻게 해요" [르포]

황병서 2024. 2. 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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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전공의 파업 첫날…주요병원 가보니
“진료 받지는 못 할까” 걱정 속 외래 환자들 붐비기도
채혈실 대기만 70명…“다른 채혈실 이용해 달라” 안내도
“항암 미뤄질까”, “약을 타지 못 할까” 시민들 걱정도

[이데일리 황병서 함지현 이영민 기자] “심장내과 진료가 내일 예약됐는데 오늘 의사선생님을 볼 수 없을까 해서 왔죠. 파업 때문에 불안해서요.”

20일 오전 7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채혈실 앞.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해 인천에서 왔다는 최모(69)씨는 채혈실 접수처 직원에게 담당 교수 방문 일정을 당길 수는 없는지 물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는 “직원이 담당 교수가 출근하면 찾아가서 멀리서 왔으니까 도와달라고 한 번 말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을 뿐”이라면서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에 반대하는 전공의와 수련의의 사직서 제출이 전국적으로 줄을 잇는 가운데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을 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혹시나’ 하고 몰린 환자들…임시 의자까지 동원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 속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전공의들이 파업에 돌입한 첫날. 이데일리가 이날 찾은 주요 병원의 모습은 어수선했다. 특히 파업의 영향으로 예정됐던 진료를 받지는 못할까 봐 아침부터 방문하는 사람들로 병원 곳곳이 붐볐다.

실제 이날 세브란스병원은 최씨와 같은 걱정을 하는 외래환자들로 붐볐다. 이날 10시 기준 채혈실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만 70명이 넘었다. 번호표를 뽑는 키오스크 2대에는 ‘채혈이 지연되고 있사오니 본관에 있는 채혈실을 이용해달라’는 문구가 담긴 종이가 붙어 있었다. 키오스크 사용을 돕는 직원 관계자는 연신 “본관에 있는 채혈실을 이용해 달라”고 외쳤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김모(66)씨는 “원래 붐비는 곳이긴 한데 이렇게 붐빌 줄은 몰랐다”면서 “(파업으로 인해 진료를 받지 못 할까 봐) 다들 걱정이 돼서 온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두경부암·식도암·폐암센터 앞에는 대기자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병원 측은 이곳에 임시 의자 10개 정도를 가져다두기도 했다. 암 환자라고 밝힌 70대 남성은 “오늘 진료 날이라서 왔다”면서도 “파업 관련해서 문자는 받지 못했는데, 다들 걱정되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다 보니 붐비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의료진의 파업을 씁쓸해했다. 임모(48)씨는 “아버지가 2주 전에 폐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서 “이런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수술 받는 환자들도…“남일 같지 않아” 눈물

당장 수술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눈물을 흘리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강모(56)씨는 “지금 남편이 일정을 사흘 앞당겨 위암 수술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일정이 당겨졌지만 만약 미뤄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수술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너무 불안한데, 우리도 파업을 한다는 소식에 혹시 수술을 못 받을까봐 마음을 졸였다”고 눈물을 내비쳤다.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시민의 불안한 모습이 목격됐다. 자녀의 수술을 앞두고 대기하던 50대 남성 보호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잡혀 있던 날짜에 수술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파업을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수술이 취소되는 환자들도 있다는 뉴스를 봤는데 시급한 상황이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60대 여성은 “3~6개월마다 수술 후 꼭 먹어야 하는 약을 타러 왔다”며 “오늘은 다행히 괜찮았지만 앞으로가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바로 집 앞에 오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앞으로 불편한 점이 생길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암 치료 중인 40대 여성의 보호자는 “다음 달 항암이 잡혀 있는데 일정이 미뤄지게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항암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힘든데 이런 불안함까지 느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하다”고 푸념했다.

한편 정부에 따르면 전체 전공의 1만3000명 중 약 95%가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의 점검 결과, 19일 오후 11시 기준 소속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병서 (bshw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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