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환자는 봐야지"…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료 파행 본격화
의대생들 휴학계 제출로 집단행동 가세…의료 현장 혼란 장기화 우려
(전국종합=연합뉴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이탈 사태가 본격화하고 있다.
아직 응급환자 사망 등 최악의 상황은 맞지 않았지만 벌써 수술이나 진료가 연기되는 등 의료 현장의 혼란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전국 의대생들이 휴학계까지 제출하며 집단행동에 가세하고 있어 의료 파행 사태의 장기화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의료대란 초읽기 현장 혼란
외래 진료가 쉴 새 없이 이뤄지는 20일 오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겉으로 보기엔 여느 때처럼 진료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날 오전 8시 30분 기준 전공의 224명 가운데 216명이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다.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근무하기로 한 신규 인턴 50여명 역시 임용포기 각서를 썼다.
이에 따라 평소 인턴과 레지던트로 북적이던 의국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딸과 함께 이 병원 암센터를 찾은 60대 김모씨는 유방암을 앓아 3주에 한 번씩 이곳에서 항암치료를 받는다.
그는 "수술을 마치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면 치료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된다"며 "만약 사태가 장기화해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남은 치료는 어쩌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타지역 대학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른 오전부터 진료받기 위해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을 찾은 환자 수십 명은 혹여나 진료가 취소될까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창구와 진료실 앞 좌석에 마련된 접수 현황판을 바라보던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의료진에게 '오늘 진료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병원 소속 전공의 319명 중 70%가량인 224명이 사직서를 냈고, 이날 오전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마저 전해지자 일부는 분통을 터트렸다.
상체에 화상을 입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병원에서 생활한다는 70대 요양보호사는 "어제 오전부터 담당 의사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그러다가 환부가 악화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타지에 있는 환자 자녀들도 연락을 통해 '아버지께 무슨 문제가 없냐'고 묻곤 한다"며 "환자는 버려둔 채 의사들이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충남대병원에 입원 중인 오재영(59)씨는 "지난 주말 복통 증세로 성모병원에 계속 전화했는데도 연락을 받지 않아 직접 찾아갔더니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해 결국 아픈 배를 부여잡고 무작정 충대병원으로 왔다"면서 "담석 제거 수술받았는데, 만약 미세한 부위에 있었을 경우 장기 손상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응급 상황일 경우 더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정부 중에 누가 잘못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환자는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도의 유일한 국립병원인 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장모(84·서귀포시)씨는 "어제 화장실에서 넘어져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큰 병원에 가서 고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 아침부터 병원을 찾았다"며 "하지만 전공의가 없어 수술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속초에서 춘천에 있는 강원대병원으로 진료를 온 A(66)씨는 "뇌졸중 때문에 원래 서울에서 진료를 보곤 하는데, 의사 파업 때문에 장시간 기다리거나 제대로 진료를 보지 못하고 돌아갈까 봐 걱정돼 그나마 도내에서 규모가 큰 대학병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을 아직 체감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 용인시에서 아주대병원을 찾은 조모(84) 씨는 "혈관외과 정기 진료를 받기 위해 예약 날짜에 맞춰 왔는데 병원 측으로부터 전공의 사직과 관련해 별다른 안내를 받은 적은 없다"며 "아직 평소와 다른 점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일부 환자들의 불편은 커질 전망이다.
전문의들이 주로 전공의가 담당하던 입원 환자 관리 업무 등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외래환자를 볼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부 진료과에서 외래 진료 가능 요일과 시간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술 일정도 일부 지연되고 있다. 병원은 전날부터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수술에 대해 환자 측에 연락해 일정을 연기하는 중이다.
의과대학 학생도 휴학계 제출 집단행동
지역의 의과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충남대 의대는 의학과 1∼4학년 학생들이 전날 수업을 거부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 집단 휴학계를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건양대 관계자는 "26일부터 등록금 납부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후에나 휴학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대 의대는 신입생을 제외한 625명 재학생이 이날 오전부터 학생대표를 통해 휴학계를 제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대 의과대학은 3월 4일 개강에 앞서 임상 실험 등 일부 수업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기했다.
전남대 의대 579명(신입생 제외) 재학생도 조선대와 마찬가지로 휴학계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충주) 의전원 학생 120여명 전원도 개강일이던 전날부터 이날까지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이 학교에 접수된 휴학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이날 전국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이 시작되는 만큼 학교 측은 오늘 중 휴학계 제출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다움 박철홍 강영훈 윤관식 박성제 강태현 박정헌 박주영 백나용 기자)
k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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