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떠난 경기지역 병원…구멍 뚫린 ‘의료 시스템’ [현장, 그곳&]
“벌써 두 번째 병원인데, 또 수술을 못 한다네요. 정말 피가 마릅니다.”
20일 오전 10시께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창백해진 얼굴로 병원을 서성이던 김모씨(여·56)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울부짖었다. 지난밤 딸의 담낭에 이상이 생겨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을 찾았던 그는 ‘의사가 없어 수술이 안된다’는 병원의 말에 아주대병원에 딸을 입원시켰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도 비슷했다. 김씨는 이곳에서도 ‘의사가 없어 당장 수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진통제만 맞은 채 버티고 있는 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같은 날 수원 성빈센트 병원 응급실 앞에서도 전전긍긍하는 한 보호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모씨(여·52)는 아버지가 배 통증을 호소해 아침 일찍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처치가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박씨는 “오래 기다리면 진료는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만약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은 못 해준다. 다른 병원을 가라'고 했다”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절반 이상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낸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당장 21일 입원해 이번 주 중으로 수술받을 예정이던 박모씨(38)는 전날 밤 수술이 연기됐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았다. 박씨는 “한 달을 꼬박 기다렸는데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다들 걱정만 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건데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경기지역 대형 병원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 수술 연기는 물론이고,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의사가 없다’는 병원 답변에 다른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날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경기지역 주요 병원들의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뒤 대형 병원 곳곳에서 의료 공백이 빚어지고 있다.
각 병원들은 비상 진료 대책을 세워 의료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지만, 전공의들 대다수가 의료 현장을 이탈하며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은 흔들리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전공의 255명 중 133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분당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270명 중 140명이 사직서를 냈다. 성빈센트병원에서는 전공의 123명 중 1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서 제출에 동참했다.
이에 정부는 비상진료대책을 가동한 상태다.
정통령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비상진료상황실장은 “여러 병원 상황을 보면 대략 2∼3주 정도는 기존 교수님들과 전임의,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등 전공의를 제외한 인력으로 큰 차질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그 이상으로 기간이 길어지면 이분들의 피로도가 누적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 중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진 기자 hansujin011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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