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가는 ‘건국전쟁’과 ‘백년전쟁’ 사이 어딘가에[핫이슈]
‘건국전쟁’은 예상대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찬양 일색이다. 몇 년 전 제작된 ‘백년전쟁’에 나온 그에 관한 부정적인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거꾸로 백년전쟁에는 건국전쟁이 다룬 긍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두 영화 모두 제작 방향에 맞춰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얼굴만 봐도 건국전쟁에서는 늙고 고난에 찌들어있는 반면 백년전쟁에서는 잘 먹고 잘 산 것을 강조하려는듯 웃고 밝은 표정이 많다.
건국전쟁에서 이 전 대통령은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떠날 때 짐 가방이 몇 개뿐이고 현지에서는 돈이 없어 지인들 도움으로 생계를 꾸릴 정도라는 점을 부각한다. 또 하와이에 망명한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가 지낸 호화 별장을 보여주며 이 전 대통령의 청빈함과 대조시킨다. 그러나 백년전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있던 박용만이 창설한 국민회를 무단 접수하고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자금을 착복하는 등 돈만 아는 인물로 묘사한다. ‘사이비 기독교인’ ‘부동산 재테크 달인’ ‘백인 여성을 농락한 플레이보이’ 등 자극적인 악평도 예삿일이다.
문제는 이 세상에 100% 악마나 천사의 성정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과거를 파고들면 상상하기 힘든 부끄러운 과오가 나올 수 있다. 과거 잘못을 갖고 그게 전부인 양 몰아가고, 그로 인해 정당한 업적까지 폄하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백년전쟁 첫 장면은 이 전 대통령이 선교단체 지원을 받아 미국 대학에 유학갔는데 성적이 형편없고 그런 와중에 속칭 야메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언급한다. 그게 사실이더라도 우리가 이 전 대통령한테 요구하는 것은 미국 박사로서 학문적 실력이 아니다. 당시 미국에 간 아시아 변방국 젊은이가 뭔 공부를 얼마나 잘 했을지 기대하기 힘들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도미(渡美) 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일합방을 통해 낡은 인습을 버리고 산업경제 발전을 하게 됐다고 평가한데 대해 악질 친일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을사오적’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글을 써서 일제에 충성을 선동한 것도 아닌데 일회성 에피소드를 갖고 사람을 통째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주만 공습 전까지 미국과 일본이 친했던 시절에 한국을 도와줄 미국 입장을 전략적으로 반영한 것일 수 있는데도 친일 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또 다른 업적 중 하나는 한국전쟁 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북한과 중공, 소련의 3중 위협에서 우리 안보를 튼튼히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해 미북 휴전협상을 방해함으로써 미군을 한반도에 붙들어두고 한국전 이후 남침 재발을 막은 것은 좌우를 떠나 모두가 인정할 점이다. 다만 반민족특별법 제정 이후 친일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국가 수호라는 자기 업적에 취해서인지 부정을 통한 정권 연장을 획책한 점은 비판받을 일이다. 물론 건국전쟁에서는 친일 청산이 안된 이유와 함께 해방 후 북한 내각이 더 친일파 일색이었다고 설명한다.
건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라치기’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이 전 대통령의 흠결을 당시 통용됐던 관례나 상황을 무시한 채 지금의 잣대를 갖고 재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우리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눈높이로는 형편없는 낙오자일 뿐이다. 현재 기준을 적용하거나 몇가지 흠결 때문에 그 분들 공로를 폄하하고 문제적 인물로 몰아간다면 그게 더 문제이지 않나. 건국전쟁을 보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 생기고 공과(功過)를 알게 된 것에 의미를 둬야지 뭐가 100% 다 맞다고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공 70%, 과 30%’ 처럼 각자 알아서 그 비율을 정하면 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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