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가는 ‘건국전쟁’과 ‘백년전쟁’ 사이 어딘가에[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2. 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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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다큐스토리]
지난주 휴가 때 장안의 화제인 ‘건국전쟁’을 봤다.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아닌데도 관객 수가 27일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섰다. 관객은 중년 이상이 대다수였고, 젊은층은 거의 없었다. 영화가 끝나자 그동안 알려진대로 박수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곤궁한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과 해외 망명까지 굴곡진 삶을 살고서 이국 땅에서 죽어간 이승만 전 대통령 마지막 모습에선 본인도 눈물이 났다. 경호원 몇 명과 쿠데타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 대통령궁 지하벙커에서 숨진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개인적인 감동이 좀 더 배가됐다. 아옌데는 미국 정보당국과 국내 반공세력의 정권 탈취 공작에 맞서 도망을 거부한 채 “민중의 충성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려 한다”는 라디오 육성을 남기고 죽었다. 둘 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공통점이 있다.

‘건국전쟁’은 예상대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찬양 일색이다. 몇 년 전 제작된 ‘백년전쟁’에 나온 그에 관한 부정적인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거꾸로 백년전쟁에는 건국전쟁이 다룬 긍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두 영화 모두 제작 방향에 맞춰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얼굴만 봐도 건국전쟁에서는 늙고 고난에 찌들어있는 반면 백년전쟁에서는 잘 먹고 잘 산 것을 강조하려는듯 웃고 밝은 표정이 많다.

건국전쟁에서 이 전 대통령은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떠날 때 짐 가방이 몇 개뿐이고 현지에서는 돈이 없어 지인들 도움으로 생계를 꾸릴 정도라는 점을 부각한다. 또 하와이에 망명한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가 지낸 호화 별장을 보여주며 이 전 대통령의 청빈함과 대조시킨다. 그러나 백년전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있던 박용만이 창설한 국민회를 무단 접수하고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자금을 착복하는 등 돈만 아는 인물로 묘사한다. ‘사이비 기독교인’ ‘부동산 재테크 달인’ ‘백인 여성을 농락한 플레이보이’ 등 자극적인 악평도 예삿일이다.

백년전쟁 포스터
백년전쟁은 특히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 28일 발간한 보고서 ‘한국 생존의 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근거로 이승만을 폄하하기 위해 필요 부분만 발췌했다. ‘이승만 인격’이란 제목의 부록a를 들어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만 나온다. 바로 다음 문장인 ‘(수단방법에) 가장 중요한 예외가 있는데 그는 공산주의자들과는 절대 거래하지(deal with) 않았다’는 내용은 누락했다. 또한 부정적인 문장 바로 앞에 있는 긍정적인 설명은 아예 빼버렸다. ‘이승만은 독립 한국의 최고 이익으로 간주하는 것을 실천하는 진정한 애국자다. 그는 한국의 최고 이익을 본인 자신의 것과 동일시한다’는 CIA 기록을 백년전쟁은 다루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두 영화는 각자 선별한 내용과 그에 맞는 코멘트들을 편집해놓은 것이다.

문제는 이 세상에 100% 악마나 천사의 성정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과거를 파고들면 상상하기 힘든 부끄러운 과오가 나올 수 있다. 과거 잘못을 갖고 그게 전부인 양 몰아가고, 그로 인해 정당한 업적까지 폄하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백년전쟁 첫 장면은 이 전 대통령이 선교단체 지원을 받아 미국 대학에 유학갔는데 성적이 형편없고 그런 와중에 속칭 야메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언급한다. 그게 사실이더라도 우리가 이 전 대통령한테 요구하는 것은 미국 박사로서 학문적 실력이 아니다. 당시 미국에 간 아시아 변방국 젊은이가 뭔 공부를 얼마나 잘 했을지 기대하기 힘들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도미(渡美) 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일합방을 통해 낡은 인습을 버리고 산업경제 발전을 하게 됐다고 평가한데 대해 악질 친일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을사오적’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글을 써서 일제에 충성을 선동한 것도 아닌데 일회성 에피소드를 갖고 사람을 통째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주만 공습 전까지 미국과 일본이 친했던 시절에 한국을 도와줄 미국 입장을 전략적으로 반영한 것일 수 있는데도 친일 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50만명 관객 돌파 앞둔 영화 ‘건국전쟁’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의 누적 관객 수는 48만5천여명으로, 5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 상영관 모습. 2024.2.16 ryousant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건국전쟁을 통해 확인한 점은 이 전 대통령 고집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기반을 놓았다는 점이다. 많은 관객들이 그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며 감동하는 이유다. 해방 직후 북한은 토지에 대한 무상몰수·무상분배로 토지소유권이 지주에서 국가로 넘어간데 그친 반면 남한은 유상몰수·유상분배로 소작농도 5년 간 수확량의 30%를 세(稅)로 내면 토지를 가질 수 있었다. 영화 속 설명대로 한국전쟁 시 대한민국 백성이 월북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농지개혁으로 얻은 내 재산 지키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업적 중 하나는 한국전쟁 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북한과 중공, 소련의 3중 위협에서 우리 안보를 튼튼히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해 미북 휴전협상을 방해함으로써 미군을 한반도에 붙들어두고 한국전 이후 남침 재발을 막은 것은 좌우를 떠나 모두가 인정할 점이다. 다만 반민족특별법 제정 이후 친일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국가 수호라는 자기 업적에 취해서인지 부정을 통한 정권 연장을 획책한 점은 비판받을 일이다. 물론 건국전쟁에서는 친일 청산이 안된 이유와 함께 해방 후 북한 내각이 더 친일파 일색이었다고 설명한다.

건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라치기’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이 전 대통령의 흠결을 당시 통용됐던 관례나 상황을 무시한 채 지금의 잣대를 갖고 재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우리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눈높이로는 형편없는 낙오자일 뿐이다. 현재 기준을 적용하거나 몇가지 흠결 때문에 그 분들 공로를 폄하하고 문제적 인물로 몰아간다면 그게 더 문제이지 않나. 건국전쟁을 보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 생기고 공과(功過)를 알게 된 것에 의미를 둬야지 뭐가 100% 다 맞다고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공 70%, 과 30%’ 처럼 각자 알아서 그 비율을 정하면 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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