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사선녀가 선사하는 위로와 힐링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오늘도 비가 왔다. 비를 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조금은 두려워졌다. 정확히는 비가 오면 미끄러워지는 길을 걷는 것이 겁난다고 해야겠다. 우리 집은 언덕에 있는데, 비가 오는 날 무심코 걸어 외출하다 두어 번 미끄러진 뒤에는 보슬비만 내려도 밖에 나서면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 서글프고 뻔하게도 또 나이 탓을 한다. 다리에 근육이 없으니 힘이 없고 관절이 세월을 새기며 걸음걸이도 부실해졌을 테지.
조금 더 상황을 들춰보고 들여다본 뒤 '경험' 덕이라고, 조금은 덜 자존심 상하게 포장해 본다. 넘어져 봤으니 위험한 걸 알겠고, 먹어 봤으니 맛을 알겠고, 여러 곳 가봤으니 안 가봐도 느낌 알고…. 좀 더 나아가면 마치 도사가 된 것처럼 상대방의 표정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고, 상대의 외모나 옷차림만 봐도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나이를 제법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판단 오류에 빠지기 쉽다. 아니, 그건 착각이고 그 순간 물리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꼰대가 되는 것이다.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를 보다 든 생각이다. 감히 '언니들' 앞에서 나이를 들먹이고 있다니. 오며 가며 잠깐씩 보다 작정하고 TV 앞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의 나와, 앞으로 더 나이 먹어 갈 내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꼬장꼬장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들의 유람과 토크쇼를 따라가다 보면 '연륜'이란 무엇이고, 살아간다는 게 뭔지 어렴풋이, 때로는 선명하게 그려진다.
맏언니 박원숙과, 혜은이, 안소영, 안문숙. 중장년 시청자라면 누구나 그들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이유로 현재 솔로로 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제목 그대로 '같이 사는' 이야기다. 시즌 3이 오기까지 출연자들은 먼저 본인들의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이들은 적어도 '겪어봐서 아는데' 혹은 '누구나 그 정도는 아파'와 같은 관용적 태도로 서로의 아픔을 넘기지 않았다. 저마다 힘겨웠을 사생활은 단순히 흥미로운 콘텐츠로 소비되기보다 공감과 위로로, 치유 받는 과정으로 다가왔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시청자들은 그들의 오늘을 기대하고 응원하게 된다. 매회 어디에 둥지를 틀고 미처 몰랐던 그 지역의 매력을 보여줄지, 또 어떤 이들이 손님으로 찾아올지. 지난 150회에 출연한 가수 송창식은 오랜만에 TV에서 볼 수 있어 특히 반가웠다. 박원숙과의 오랜 인연, 한창때 만났던 이들이 기나긴 세월을 지나 마주한 모습은 당사자들이 아니어도 코끝이 살짝 찡해지는 감동을 전했다. 어릴 적 뭣 모르고 들었던 가수의 노래가 시간을 거슬러 또 다른 의미로 가슴에 와 박히는 경험은 나뿐이었을까.
단순하게,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목 그대로 '같이 살자'인 듯싶다. 인간은 참 혼자 살기 어려운 동물이다. 스스로 고립을 택해 깊은 산속으로 스며들지 않는 한, 어찌 됐건 우리는 크고 작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 부대끼고 때로 다투고 등 돌려도, 결국은 보듬고 어울려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만 또 사람 덕분에 치유할 수 있기에. 더불어 어차피 태어났으니, 그 모든 희로애락을, 고난, 슬픔도 부정하지 말고 동지 삼아 같이 살아보라고. 그러다 보면 고진감래를 느끼게 된다고.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고진감래를 나타내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보다 극적이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이들이(메인 출연자들은 물론 손님들까지도) 누리는 '즐거운 지금'을 목격할 수 있으므로. 안타깝게도 인생에서 행복은 진행형으로 누리기 어렵다. 시간은 항상 흐르니, 행복이란 늘 스칠 뿐이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만 같다. 그러니 더더욱 악착같이 찰나의 행복을 발견하고, 마음껏 누려야 할밖에.
그러니 '다 해 본 가락'이니 별것 없다고, 뭐 그리 새롭겠냐고. 부정적인 결과를 지레 예측해 마주할 수 있는 즐거움을 놓쳐버리지 말자. 무수히 힘든 과정을 겪더라도 결국 좋았던 하나의 기억이 모든 고달픔을 지워 버리는 경험도 많이 하지 않았나. 금주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이번 주에는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골라 신고 씩씩하게 비 오는 거리를 누벼 보련다. 그리고, 송창식이 언니들에게 선물했던 달항아리 케이크를 맛보러 여주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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