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돈이 필수는 아니다…연구로 입증된 ‘만족의 힘’

곽노필 기자 2024. 2. 20. 0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 19개 토착 원주민 사회 조사 결과
삶의 만족도, 선진 고소득 국가와 비슷
미소 행복 만족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접하면 많은 이가 고개를 흔들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설문조사 결과들은 고소득 국가 사람들이 저소득국가 사람들보다 삶에 더 큰 만족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2022년 유엔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연 4500달러 미만인 나라 중 주관적인 웰빙, 즉 삶의 만족도(캔트릴 사다리) 점수가 5.5점(10점 만점) 이상인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

반면 삶의 만족도 점수가 7점을 초과하는 나라는 모두 1인당 국내총생산이 연 4만달러를 넘었다. 물론 소득이 일정한 수준 이상이 되면 행복감은 소득 증가에 비례하지 않고 정체되는 현상(이스털린의 역설)도 나타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이런 행복 연구들은 인류의 오랜 역사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산업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 산업사회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물질적 부와 삶의 만족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느 정도 편향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금전 소득과 거리가 먼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환경과학기술연구소(ICTA-UAB)와 캐나다 맥길대 공동연구진이 산업사회와의 접촉이 미미한 토착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세계 19개 지역 원주민 29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금전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선진 고소득 국가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Joan de la Malla/바르셀로나자치대 제공
노란색 점은 토착 원주민 조사 결과, 진한 파란색 점은 갤럽 세계여론조사(2022), 옅은 파란색 점은 세계가치관조사(WVS, 2022) 결과다. PNAS에서 인용

자산 75만원…“내 삶 만족도 10점 만점에 10점”

연구진은 세계 19개 지역 원주민 2966명을 대상으로 직접 대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금전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현재의 고소득 국가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 지역은 아시아의 중국과 네팔, 인도,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짐바브웨, 가나, 중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과테말라 등이었다. 조사 대상 중 금전 소득이 있는 가구는 64%에 불과했다.

조사에 참여한 소규모 원주민 공동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만족도는 평균 6.8점이었다. 이는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의 세계인 평균 점수 5.1점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점수 6.7점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이시디 회원국인 한국(5.8점)과 비교하면 1점이나 높다.

조사 지역 중 4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행복 점수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 점수(8점)도 웃돌았다. 특히 과테말라 서부 고원지대의 농부들은 70명 중 30명이 자신의 삶에 10점 만점을 주었다. 연구진은 이 공동체의 1인당 평균 자산을 560달러(75만원)로 추정했다.

삶의 만족도 조사를 벌인 19개 토착 원주민 지역. PNAS에서 인용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상상력 넓혀줘

연구진은 이들 중 상당수가 소외와 억압의 역사를 겪었음에도 높은 점수가 나온 점을 지적하며 “높은 수준의 물질적 부가 없어도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관념과 일치하는 조사 결과”라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바르셀로나자치대의 빅토리아 레예스 가르시아 박사는 “조사 결과는 소득과 삶의 만족도 사이에 흔히 관찰되는 강한 상관관계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며, 산업화된 경제에서 창출된 부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입증해준다”고 말했다. 높은 수준의 주관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 집약적인 경제 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들이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는 이유까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대신 이전 연구들을 인용해 가족 및 사회의 지원과 관계, 신뢰, 영성, 자연과의 연결 등이 이러한 행복의 밑바탕에 있는 중요한 요소들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비금전적 요소가 삶의 행복에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이런 요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크리스토퍼 배링턴-리 맥길대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종이며, 다른 사람 및 살아 있는 것과 어떻게 상호관계를 맺느냐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매우 강력한 요소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삶이 있을 수 있고, 그 삶도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줬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73/pnas.2311703121

High life satisfaction reported among small-scale societies with low incom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