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어나면 건보 재정 부담 커진다는데…“과잉진료 막지 못하면 현실로”

유병훈 기자 2024. 2. 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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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의사 늘면 건보 재정 고갈 빨라져” 정부 “근거없어”
‘유인수요’는 의료 현실… ‘가용성 효과’와 비교 필요
과잉진료 줄여 지출 최적화해야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문제다.

20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에 따르면 의대 증원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 고갈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이 같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유인수요 이론과 변호사 증원의 사례를 통해 의대 증원이 건보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 원장에 따르면, 유인수요 이론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전문직 시장에 적용한 것이다. 전문직 서비스 공급자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거나 그 이상으로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 시장이 커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의사 공급보다 의료 서비스 수요의 증가가 더 크게 늘어나면서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우 원장의 분석이다. 우 원장은 “연구원 자체 추산 결과 의대생을 2000명 늘릴 경우 오는 2040년 국민 1인당 의료비가 매월 6만원 가량 더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구 1000명 당 의사 1명 증가 시 의료비는 22% 늘어난다는 지난 2007년 건강보험공단의 연구 보고서도 근거로 제시했다.

우 원장은 비슷한 사례로 변호사 증원 사례를 들었다. 지난 2013년 1만 5905명이던 변호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도입과 함께 2023년 3만 4182명으로 2.15배 늘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법률시장의 경우는 2.3배로 더 크게 증가했다고 우 원장은 밝혔다. 변호사 증원과 함께 법적 분쟁이 사회 적정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늘어나고, 변호사의 질적 하락을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우 원장은 “법률시장의 경우 100% 자가 비용 부담 원칙이 적용됨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의료시장은 건보가 공유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공유지의 비극’ 현상까지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유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한정된 재화를 뜻한다. 따라서 개인으로서는 공유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에 무분별하게 남용하게 되고, 이에 따라 모두가 함께 써야 할 공유재가 고갈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결국 의료 시장에서도 무분별한 의료서비스 남용으로 공유재인 건보 재정이 고갈되리란 뜻이다.

가천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도 이달 16일 ‘정부 의대 증원안을 반영한 의사 인력 공급 및 의료비 전망’에서 현재의 의사 인력 증원이 의사 1인당 건강보험 진료비 인상에 10% 이상 영향을 주는 시점은 증원 후 15년 이후로 예상됐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총진료비가 급증하면서 30년 후 생산 인구는 자신 의료비의 5배 이상의 부양 인구 의료비를 감당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 교수는 또 정부의 2000명 증원안이 시행될 경우 20년 후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수는 3.5~3.7명에 도달하고, 해당 시기의 대학 입학 인구(18세) 1000명당 의대 정원은 2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이사장은 당시 “예전에 미국에서 의사가 모자라서 수입했는데 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났다”며 “숫자가 많아지니까 각자 벌어먹기 위해서 그만큼의 수익을 창출한 것”이라고 미국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는 의료계 측의 이 같은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의료비 지출은 정부의 과잉비급여 관리, 의료 남용 방지 등을 통해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면서 “의료인력 확충은 오히려 의료비 지출의 급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제2차관도 지난 7일 라디오에 출연해 “유인수요론은 1970년대 이론이고 이미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실증을 해봤더니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비 증가는 의사 수와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며 “의료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는 고령화, 소득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료 출신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장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연세대 보건행정학부의 정형성 교수는 의료 시장의 특이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 시장은 전문성이 있는 공급자인 의사와 전문성이 없는 수요자인 환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환자의 수요를 환자가 아니라 의사가 결정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과잉진료라는 유인수요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의사가 과잉공급될 경우는 유인수요가 나타나기 더 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유인수요가 ‘불필요한 의료 수요’라는 점이다. 정 교수는 “사실 의사들 스스로 유인수요 창출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은 과잉진료를 자인하는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 교수는 유인 수요뿐 아니라 ‘가용성 효과’(availability effect)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가용성 효과는 의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환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건강이 향상되는 효과를 뜻한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유인수요보다 가용성 효과가 더 크므로 건보 재정 소모보다 그 편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결국 유인 수요를 최소화하고 가용성 효과를 극대화해 건보 지출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과잉진료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복지학자는 “의료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현행 건보 체계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며 “그렇다면 불필요한 도수치료 등 과잉진료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 유인수요를 최대한 억제하는 방향으로 건보 보상 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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