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악몽’…“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KBS 전주] [앵커]
재난이 휩쓴 현장은 잔해를 치우고 세월을 덧대면 어느덧 원래 모습을 되찾지만, 참사가 남긴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재난의 악몽을 힘겹게 버텨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겨우내 잦은 비가 87살 노인을 또 초조하게 합니다.
[박순임/2020년 섬진강 수해민 : "비가 오면 진짜로 또 그런 일이 닥칠까 봐 겁이 난다고요. (오늘처럼?) 잠이 안 와, 밤새도록 잠이 안 와."]
3년 전, 5백 년 만에 쏟아진 폭우에 섬진강 제방이 터졌고, 흙탕은 집도 소도 집어삼켰습니다.
벽지를 새로 바르고 깨끗한 침대를 들여놓으며 다시 꾸린 살림.
그러나 할머니의 밤은 이전처럼 편하지 못합니다.
["밤에 들어왔으면 죽었지. 밤에 물이 들어왔으면 죽었다고요. 가슴이 두근두근하죠. 혼자 있으니까, 혼자 있으니까 무서워…."]
서울 신림동, 이 씨의 반지하 집 현관문은 1년 넘도록 찌그러진 채 그대로입니다.
["물 압력으로…. (휘어진 거구나?) 네, 아예 안 열렸어요. 꿈쩍도 안 했어요."]
빗물은 낮은 곳부터 덮쳤고 '반지하'는 감옥이 됐습니다.
꼼짝없이 갇혀 죽고 살고를 마주한 그때, 창문을 깬 이웃들이 지하방으로 손을 뻗었고, 이 씨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종아리, 배를 스쳐 턱밑까지 차오르던 차디찬 공포는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2022년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자 : "아, 여기서 죽나? 죽으면 안 되는데. 어린 딸이 생각났어요. 아직은 엄마의 손이 필요한데? 그 생각을 여기 서서 한참 했었어요."]
["순식간에 물이 들어차 버린 오송 지하차도…. 거대한 흙탕물이 지하차도 안으로 쉴새 없이…. 모두 14명이 숨지고…."]
2023년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3분 남짓 만에 지하차도는 6만 톤 물로 가득 찼습니다.
타향살이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좋은 밥 먹이고자 청주로 간 엄마는, 이미 하루 전 떠난 아들의 주검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 : "같이 밥 먹자고 했거든요. 그래 엄마가 일요일에 갈게, 그랬었는데…. 토요일에 사고 난 건 상상을 못 했어요. 뉴스를 안 봤거든요. (다음날) 내가 청주 오다가, 청주 도착하기 10분 전에 알았어. (나아진 것 같아요? 시간이 흘렀는데.) 하나도 안 나아졌어요. 점점 더해요. 점점 더 보고 싶어요. 하늘만 봐도 원망스럽고 날이 너무 좋아도 원망스럽고…."]
KBS가 계명대학교 심리학과와 사례연구를 통해 재난 경험자 84명의 심리 변화를 좇아 보니, 42.8%가 여전히 불안 증세를 겪고 있고, 63.1%는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들의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김동균/그래픽:최희태
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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