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대신 내드립니다” 산재 인정받게 해주고 보험금 30% 챙긴 노무법인

세종=손덕호 기자 2024. 2. 2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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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성 난청, 나이 들수록 청력 떨어지는 점 고려 않아
산재 신청자 중 60 대 이상이 93%…보상급여액 1818억
의료기관 4년여간 64회 변경하면서 ‘나이롱 환자’ 유지
뇌혈관질환 재해자, 78세지만 장해급여 월 675만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 근처에도 병원 많은데 왜 그렇게 멀리 가나요?”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려는 환자 A씨가 노무법인 측에 한 질문이다. 그러자 노무법인은 “본인들과 거래하는 병원”이라고 답했고, 병원 이동도 노무법인 차량으로 했다. 진단·검사비도 노무법인이 모두 지급했고, A씨는 소음성 난청 승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서 약 4800만원을 지급받았다. 노무법인은 수임료로 약 30%(1500만원)을 챙겼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이 같은 노무법인을 매개로 한 산재 카르텔 의심 정황과 각종 부정 사례를 적발해 수사의뢰하고 부정하게 받은 보상금을 환수하는 등 모든 행정적 수단을 동원해 강력한 조치를 했다고 발표했다. 노동당국은 지난해 11~12월 산재보험 제도특정감사를 벌였고, 지난달에는 노무법인을 점검했다.

A씨 사례처럼 이번 점검에서 일부 노무법인은 의료법을 위반해 환자에게 비용을 대납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특정 병원에서 진단을 받도록 유인했다. 산재 브로커(사무장) 개입이 의심된다. 이런 사건을 연간 100여건 수임하면서 환자가 받는 산재 보상금의 최대 30%까지 수수하는 등 기업형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사나 변호사가 직접 업무를 처리하지 않은 경우도 적발됐다. 사무장이 산재 보상 전 과정을 처리하고, 수임료도 사무장 통장으로 수수했다. B씨는 근골격계 질환과 난청 등 산재 상담과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소 직원이 전담해 처리했다. 수수료 1700만원도 이 직원이 정했다. C씨는 담당 변호사는 산재 소송 과정에서 한 번 봤을 뿐, 산재 요양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노동당국은 이번 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접수되거나 자체 인지한 사건 883건을 조사했고, 이 가운데 486건(55%)이 부정수급 사례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정하게 타간 산재 보험금은 총 113억2500만원이다. 노동당국은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 부당이득 배액 징수, 장해등급 재결정,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부정수급 의심 사례 4900여건은 근로복지공단이 자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A씨 사례인 소음성 난청은 현재의 산재 인정 제도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청력이 떨어지는 점을 반영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는 게 노동당국 설명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소음성 난청은 판례 등에 따라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 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 문제가 발생해 위법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장에서 떠난 지 오래 지났더라도 청력이 떨어져 있다면 소음성 난청으로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노동당국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 산재 신청자 중 60대 이상이 93%를 차지한다. 신청 건수도 2017년에는 2239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만4273건으로 573%, 보상급여액은 같은 기간 347억원에서 1818억원으로 424% 증가했다.

이 장관은 “고용부는 위법 정황을 토대로 공인노무사 등 대리 업무 수행과정 전반을 조사하고,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곳에 대해 처음으로 수사를 의뢰했다”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노무사 징계, 노무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인노무사 제도에 보완이 필요하면 개선 작업을 할 예정이다.

현행 산재보험 제도가 근로자가 치료를 받은 후 직장에 복귀하도록 하는 목적과 달리 장기간 요양하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는 전체의 48% 수준에 달한다.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어 사실상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혔다.

환자가 요양기간을 연장하려 의료기관을 변경하기도 한다. 이 장관은 “한 재해자는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전문 치료를 이유로 57회, 생활 근거지 변경을 이유로 7회 등 총 64회 변경하며 4년 이상 요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받는 사례 있었다. 뇌혈관질환으로 재해를 당한 C씨는 올해 78세이지만 장해급여를 월 675만원씩 받고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면 연금액도 중복해서 받을 수 있다.

노동당국은 과제로 ‘지속 가능한 산재보험 운영’을 꼽았다. 이 장관은 “산재보험도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로 연금 부채가 약 55조원에 달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22조원의 적립금이 적정한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연령 특성, 일반 근로자 등과의 형평, 노후보장으로서 타 사회보험과의 연계 등을 고려해 합리적 보상이 되도록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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