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 살리고 떠난 삼남매 엄마…“간호사 되어 엄마 사랑 나눌게요”
지난해 10월 1일, 예비 대학생 이현주 씨네 가족은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바로 삼 남매의 든든한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아내였던 고(故) 조미영 씨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조미영 씨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려졌습니다. 가족들은 생전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던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심장, 폐, 간, 신장, 각막 등을 기증한 조미영 씨는 7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습니다.
■"엄마가 정말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힘들지만 숭고했던 결정
평소 자식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장기기증을 하자, 너희들도 그렇게 선택해달라'고 했던 조미영 씨. 그러나 막상 큰딸 이현주 씨는 뇌사 상태에 빠진 조 씨의 장기기증 결정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원하던 거니까 (장기기증을) 선뜻 선택하기는 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엄마가 일어나실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는 건 정말 의미 깊은 일이긴 한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옆에 안 계시니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사실 제일 힘들었어요."
조 씨가 떠난 지 채 5개월이 지나지 않은 상황. 가족들은 아직도 조 씨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집니다. 이현주 씨는 아직도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함께 했던 일상, 함께 먹던 저녁과 웃으면서 하던 소소한 대화가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괴롭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더 망설여졌던 장기기증 결정, 그러나 이제는 엄마가 남긴 숨결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장기기증을 하면) 그 사람이 없어진다는 게 제일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 마음을 생각했을 때, 장기기증으로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나면 어떻게든 엄마가 옆에, 이 세상에 같이 계신다는 거니까, 그 의미를 좀 더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가 베풀었던 사랑, 간호사가 되어 전할 것"
이현주 씨는 다음 달 간호대학에 입학합니다. 기존에 다니던 학과를 떠나 간호대학 진학을 결심한 건 조미영 씨의 영향이 큽니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간호사가 되어 엄마가 베풀었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큰 사랑을 주셨는데 다른 사람한테 이걸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엄마가 먼저 사랑을 다른 사람한테 베푸셨는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나'는 생각을 가지고 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돌아가셔도 아버지는 하나의 희망…지켜봐 주세요"
생명을 나누고 간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는 꿈을 꾸는 이는 이현주 씨뿐만이 아닙니다. 2012년, 장기기증으로 7명의 삶을 살리고 떠난 고(故) 신윤재 씨의 아들 신윤건 씨.
아버지가 떠났을 때, 초등학생 5학년이던 신윤건 씨는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신윤건 씨는 아버지가 자기 삶의 태도나 가치관을 만들어주셨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짧은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자랐습니다. 이따금 저희 아버지와의 이별이 매우 아프고 때로는 보고 싶지만, 아버지께서 실천하신 나눔이 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로의 본격적인 진출은 앞둔 신윤건 씨는 요식업 분야로 진출하길 꿈꾸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요식업 쪽으로 저만의 가게를 열어서 어려움이 많은 분께 자원봉사로 급식차 같은 것도 운영해보고 싶고요. 따뜻한 밥 한 끼를 선물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제약 없이 꿈 펼쳐가길…특별한 장학금 수여식
최근 5년간 뇌사 장기기증인은 2천 2백여 명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연령대의 자녀를 뒀을 가능성이 큰 30~50대의 비율은 59% 정돕니다.
장기기증자 유자녀들 가운데, 이현주 씨나 신윤건 씨와 같이 꿈을 키워가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는 '뇌사 장기기증자' 유자녀를 위한 특별한 장학금 수여식을 매해 열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린 부모님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경제적 제약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제(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서 열린 장학금 수여식에서는 이현주 씨와 신윤건 씨를 포함한 14명의 유자녀가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나눔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을 장학생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꿈을 이뤄가길 진심으로 응원해봅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니까 어떻게 잘 성장하는지 지켜봐 주세요"
-장기기증자 고(故) 조미영 씨의 딸 이현주 씨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온 한 아이가 이제는 사회로 나갑니다. 멀리서 한 번 지켜봐 주세요."
-장기기증자 고(故) 신윤재 씨의 아들 신윤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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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경 기자 (ba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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