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개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수사, 은닉자금 실체 드러날까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경찰이 2014년 '황제노역'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시한 결과다. 경찰은 허 전 회장의 일부 혐의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고 신병 확보 절차에 나섰다. 그렇다면 허 전 회장은 향후 어떤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될까.
개인회사에 회삿돈 전달한 혐의가 대표적
허 전 회장은 2019년 사실혼인 부인 황아무개씨와 사위, 친척 등 다수의 피의자와 함께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광주광역시 서부경찰서에 고발됐다.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고발 4년여 후인 지난해에야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결과는 불송치였다. 공소시효 만료와 무혐의 등의 이유였다.
상황은 지난해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달라졌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이 형사처분을 회피할 목적으로 2015년 8월부터 뉴질랜드로 도피성 출국을 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봤다.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허 전 회장의 특정 혐의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주그룹 자금 약 100억원을 허 전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인 HH개발에 넘긴 혐의가 대표적이다. HH개발은 2000년 설립된 골프장 운영업체로 허 전 회장과 황씨가 지분을 50%씩 보유했다. HH라는 상호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성의 이니셜로 알려졌다. HH레저는 2000년대 초 담양레이나CC를 인수했다. 허 전 회장은 골프장 매입은 물론 개·보수 및 확장 등에 투입된 자금을 대주그룹 자금으로 충당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런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HH레저는 2022년 말 기준 자산총액 900억원대, 연매출 129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HH레저는 현재 허 전 회장의 사실혼 부인 황씨가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그의 형부인 차아무개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대주 피오레 아파트 분양 피해자(이하 피해자) 40명의 추가 고소 사건도 배당받아 수사 중이다. 이들은 대주그룹 계열사인 지에스건설(GS건설과 무관)로부터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분양대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허 전 회장은 물론 가족들까지 고소 대상에 포함했다. 허 전 회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을 포괄일죄로 보면 공범인 가족들에 대한 공소시효도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포괄일죄는 여러 혐의가 하나의 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피오레 분양 피해자들 "분양대금 횡령"
피해자들은 허 전 회장이 자신들의 분양대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에스건설에는 2006년(1634억원)과 2007년(990억원) 해당 아파트 분양대금 2624억원이 입금됐다. 그 직후 이 중 2588억원이 대주그룹 계열사들에 대여 형태로 전달됐다. 구체적인 내역은 태전건설 404억원과 미래알에이씨 221억원, 한마루 90억원, 대주건설 468억원, 대한건설 48억원 등이다. 아파트 건립에 사용해야 할 자금이 계열사들의 사업비용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 결과 지에스건설로부터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분양대금 유출로 공기가 계속 지연되면서, 입주 예정일인 2008년 12월까지도 아파트가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양 피해자들은 지에스건설을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분양대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지에스건설의 자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허 전 회장 일가가 자신들의 분양대금을 횡령해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태전건설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경기도 광주 태전동에 아파트를 건립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된 태전건설은 당초 허 전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했지만 2007년 최대주주가 황씨로 변경됐다.
태전건설은 지에스건설로부터 넘겨받은 자금 등을 활용해 아파트 건립을 위한 부지를 매입했다. 태전건설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허 전 회장 측근의 주도로 태전7지구 태전힐스테이트 1·2차 3600여 세대와 타운하우스 등을 건립해 분양했다. 이를 통해 태전건설이 올린 수익은 1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다만 황씨는 사업 시작 시점을 전후로 보유 중이던 태전건설 지분 전량을 자신의 측근에게 225만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황씨가 태전건설 주식을 차명 보유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막대한 수익이 예상되는 태전건설 지분을 헐값에 처분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까닭에서다.
피해자들은 허 전 회장이 부도 직전에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대주그룹 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요청했다. 허 전 회장은 대주건설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계열사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린 2009년 차명으로 코너스톤홀딩스를 설립했다. 이후 코너스톤홀딩스는 대주그룹 계열사 및 관계사들의 부실채권(NPL채권)을 집중적으로 인수했다. 대부분 대주그룹 계열사 간 대여 등 자금 거래로 형성된 채권이었다.
채권 매입 비용은 대주그룹 계열사이던 동양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50억원으로 충당했다. 대주그룹 계열사 자금으로 또 다른 계열사 채권을 사들인 셈이다. 이렇게 코너스톤홀딩스가 확보한 대주그룹 계열사들의 채권은 최소 1400억원대에 달했다. 인수한 채권은 추심 등의 방식으로 현금화됐다. 이 과정에서 코너스톤홀딩스는 취득가 대비 130배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고소장에는 허 전 회장이 직접 그룹 계열사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는 2009년 지에스건설에 대한 70억원 규모의 채권을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 기부 형태로 전달했다. 그리고 2014년 재단으로부터 채권을 돌려받은 후 지에스건설에 7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허 전 회장은 같은 해 11월 법원에서 지급명령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특히 채권 은닉이 이뤄진 시기는 대주그룹의 위기로 하청업체들의 피해가 확산하던 때였다. 하청업체들에 대한 대주그룹 계열사들의 미지급금만 5000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당시 대주그룹 하청업체들과 재하청업체들이 줄도산했다. 일부 하청업체는 아직까지도 미지급금 회수를 위해 대주건설 등을 상대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경찰, 허 전 회장 신병 확보 절차 착수
피해자들은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 도피 중에도 호화생활을 지속해올 수 있던 배경과 자금 은닉 의혹이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며 호화생활을 누려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 고급 카지노 VIP실에서 도박을 하거나 요트와 낚시, 골프 등을 즐기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돼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수사의 핵심은 허 전 회장의 신병 확보다. 그는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2010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허 전 회장은 선고 직후 그해 1월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그는 4년여 후인 2014년 3월 귀국했다. 벌금 254억원을 노역형으로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의 노역이 하루에 벌금 5억원을 탕감하는 조건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황제노역' 논란이 불거졌다.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노역형을 중지하고 벌금 납부로 전환했다. 허 전 회장은 254억원의 벌금을 완납하고 2015년 8월 다시 뉴질랜드로 출국해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재 허 전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한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공소시효 유지를 위해 수사 중지 조치를 했으며, 허 전 회장 귀국 즉시 소환조사할 수 있도록 공항에서 경찰 소환 통보를 하는 지명 통보 절차도 신청하기로 했다.
허 전 회장의 신병이 확보되면 경찰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여기에 허 전 회장의 탈루 혐의와 관련한 재판도 진행될 전망이다. 그는 2019년 사실혼 부인 등 3명의 명의로 차명 보유한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 매각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5억원과 차명 주식 배당금의 종합소득세 650만원을 탈루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이 건강상 이유와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재판은 장기간 공전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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