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동물의 왕국을 벗어나야
[똑똑! 한국사회] 이주희ㅣ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 동물학자는 ‘새끼’를 낳아 기를 환경이 아니니 지구를 위해서라도 그냥 적응해 살자고 한다. 그러나 동물의 왕국에서는 수사자처럼 우두머리 수컷이 재생산권을 종종 독점한다. 지난 1월 발표된 한국은행의 브리프에 따르면 고학력 여성은 저학력 여성보다, 저학력 남성은 고학력 남성보다 미혼율이 높았다. 혼외 자녀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상황인 만큼 재생산이라는 본능적 욕구가 계층과 젠더의 상호작용에 따라 충족되거나 거부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족처럼 저학력 남성은 비자발적으로, 고학력 여성은 자기 선택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내 전공 수업의 팀 과제로 한국과 스웨덴 중 일하기 좋은 곳을 탐구해 발표한 두 학생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심층면접까지 열정적으로 진행한 이 팀의 연구 목적은 미래에 어디서 노동자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공계 팀원은 어디서든 결혼과 출산 의사가 있었지만, 사회과학 전공 팀원은 결정한 국가에 따라 자녀 계획을 변경할 의사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책이 무효과인 이유는, 인구집단마다 저출생의 사유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를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불평등’이며 또 그런 만큼 제도마다 정교한 기획이 필요함을 간과한 채, 공무원의 협소한 경험과 시각으로 그나마 재생산이 가능한 집단에 대한 지원만을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출생아에 대한 현금 지원은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저출생 대책이고, 출생아가 급격히 감소 중인 만큼 더 많이 지출되어도 좋다. 그렇지만 결혼조차 꿈꾸지 못하는 청년에게는 기본소득과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더 시급한 저출생 대책일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현금 지원보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공 보육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보육 인력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돌봄의 높은 가치를 반영한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육아휴직 제도는 비정규직, 영세업체 노동자,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기타 종속적 1인 자영업자에겐 자동개시를 하든, 수당을 올리든, 아빠휴가 1개월을 보장하든 아무 의미가 없다. 한 자녀당 총 700일이 넘는 휴직 기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 사용률은 최하 수준이다. 남성의 사용률이 저조하므로 여성은 육아휴직으로 인한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스웨덴에서는 한 자녀에게 총 480일의 육아휴직이 보장되며 이 중 90일은 부와 모 간 양도할 수 없다. 휴직 기간을 줄이더라도 부모 보험이든 특별 기금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모든 일하는 국민에게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한편 적어도 첫 6개월은 상한 없이 통상임금을 지급하고 그 이후엔 수당을 대폭 삭감하더라도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평등하게 반으로 나누어 사용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저학력 남성과 고학력 여성이 미혼율이 높은 근본적 이유는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혜택받는 집단은 소수의 우두머리 수컷들뿐이다. 힘든 생계 부양의 책임을 공평히 나누고 자녀 돌봄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사회는 청년 여성뿐 아니라 대다수 청년 남성에게도 좋은 사회이다. 이 명백한 진리가 갈라치기가 주특기인 우두머리 청년 정치인에 의해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쏟아져 나온 저출생 대책 중 초등학교 3학년까지 연 5일간의 유급 돌봄휴가를 주겠다는 것이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12살, 경우에 따라 16살까지 아픈 자녀가 있을 경우 한 자녀당 연 120일간의 유급 돌봄휴가가 제공된다. 스웨덴은 장시간 노동도 사라진 국가이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 대신 늘봄학교를 저녁 8시까지 이용하도록 하겠단다. 양 국가를 면밀히 비교한 뒤 한 팀원은 자녀를 포기한 채 한국을 선택했고, 한국 과학계의 성차별을 고민하던 다른 팀원은 스웨덴에서 일하기를 선택했다. 자기 선택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자기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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