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포인가 진심인가…또다시 동맹들 흔드는 트럼프 노림수는?

이본영 기자 2024. 2. 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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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국에 2% 방위비 압박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7일 미시간주 워터퍼드에서 유세하고 있다. 워터퍼드/AP 연합뉴스

미국 중심 동맹 질서 와해의 전주곡일까? 지지층 결집이 주목적인 동맹 때리기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대서양과 태평양 건너 미국 동맹국들의 신경을 다시 곤두서게 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유세에서 ‘돈을 안 냈는데 러시아가 공격한다면 우리를 보호해주겠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정상의 질문에 “보호해주지 않겠다. 사실 나는 러시아가 원하면 무엇이든 하라고 독려할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과거 나토 정상회의에서 실제로 이런 문답이 오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그의 입장도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러시아로 하여금 돈을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은 마음대로 하라고 독려까지 하겠다는 말에 유럽 쪽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이 유력시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 국내적으로는 동맹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동맹국들은 그의 언행이 엄포와 진심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봐야 하는지 치열한 눈치작전에 들어갔다.

트럼프 2기엔 대서양 동맹 와해?

동맹을 적성국에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듯한 말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러시아가 이웃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한 상황이라 더욱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일 수밖에 없다. 또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나토라는 집단안보체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2018년 7월 나토 정상회의 때 나토 탈퇴를 위협한 바 있다.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연 그는 나토의 유럽 쪽 회원국들이 방위비 지출을 대폭 늘리지 않으면 자신은 “매우 불만족스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정상회의에서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미국은 혼자 가겠다”며 탈퇴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토 탈퇴설’을 가장 강하게 펴는 사람은 2018~2019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한 존 볼턴이다. 백악관을 나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그는 그 무렵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 탈퇴를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최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도 2018년 나토 정상회의를 거론하면서 “난 트럼프가 나토에서 거의 탈퇴하려고 했던 때에 거기에 있었으며, 그는 협상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엔엔의 짐 슈토 기자가 출간 예정인 책을 위해 인터뷰한 전직 고위 관리들 발언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한 전직 고위 관리는 2018년 나토 정상회의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당시 합참의장에게 실제로 나토 탈퇴 준비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존 켈리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 억제력으로서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등 군사동맹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0년에 펴낸 책에서 “유럽에서 철군하면 매년 수백만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집권 1기 때 미국을 파리기후협정, 이란 핵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잇따라 탈퇴시킨 전력도 군사동맹 파기를 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캐슬린 파커는 최근 칼럼에서 나토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는 회원국은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발언에 대해 “난 그의 말을 100% 믿는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라고 했다.

지지층 결집, 선거용 엄포에 무게?

트럼프 전 대통령 쪽에서는 이번 발언은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쏟아지자 해명성 발언도 나온다.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는 대통령직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걱정스럽지 않다”며,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 2% 지출 의무를 지키기를 희망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점은 그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은 방위비 지출을 늘리라는 압박용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에 대한 ‘이해도’나 태도를 두고도 주장이 엇갈린다. 볼턴 전 보좌관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동맹 구조란 무엇을 하는 것이고 어떻게 이로운 것인지 모른다”며 “그는 4년간 대통령을 했지만 오벌오피스에 들어갈 때부터 나오는 그날까지 (동맹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그의 후임자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나토 탈퇴를 추진할 것이라는 논의가 워싱턴에서 있기는 하지만 난 그게 실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그는 동맹이 미국에 주는 군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지만, 독일 같은 나라들이 그들의 안보에 관해 정당한 몫을 지급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놀아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역시 트럼프의 발언은 엄포에 가깝다는 설명인 셈이다.

이번 발언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관’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선거용 발언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 지나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것처럼 동맹들에 과도한 요구를 하며 지지자들의 배타적 성향에 호소하고 정치적 이득을 누려왔다. 그는 2018년 나토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압박으로 다른 회원국들이 330억달러(약 44조원)를 더 내기로 했다고 근거도 없이 주장하며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고 자랑했다.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나토 회원국들이 자신의 압력에 반응해 “수천억달러가 들어오고 있다”고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긴장을 한껏 끌어올리면서 파국의 분위기를 조장하고, 상대가 뒷걸음치면 재빨리 승리를 선언하고, 그 결과를 과장해 큰 승리라고 주장하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동 패턴 중 하나다. 체코의 마르틴 드보르자크 유럽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엄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확실한 건 일관된 거짓말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층 다수가 군사동맹을 낭비로 보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의 집권 2기에는 나토나 한·일과의 군사동맹이 어떤 식으로든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이 미국과 동맹국들의 틈을 더 벌리고 있다. 그는 “모두가 미국에 빚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나토 동맹국들을 “돈을 갚지 않는” 나라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이나 나토에 진 빚은 없다. 단지 스스로 방어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방위비를 지출하자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지난해 기준 31개국 중 11개국이 이를 충족했고, 나토는 올해는 18개국이 이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자신이 2017년 취임하기 전에는 유럽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해마다 줄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 이후 국내총생산 대비 2% 방위비 지출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방위비를 늘려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2년차인 2023년에는 미국을 제외한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증가율은 8.3%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나토 동맹들 사이에서는 선거전이 이어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과 선동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취약한 동맹국들은 그가 재집권하면 집권 1기 때 쓴 방법을 다시 동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부와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등을 통한 환심 사기가 그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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