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찍어도 안팔면 손해 아님” 해외 부동산 만기 연장하며 버티기 들어간 운용사들

정민하 기자 2024. 2. 20. 06: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좋은 가격 제시할 원매자 찾기 나선 운용사
만기 연장해 부동산 투자 수요 회복할 시기 노려
올해 만기 맞는 펀드 5~6개에 불과… ELS보다 파장 적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이어 해외 부동산 펀드가 대규모 손실 위험에 노출됐지만, 금융당국은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 펀드 규모 자체가 ELS만큼 크지 않은 데다 복수의 펀드들이 자체적으로 만기를 미뤘기 때문이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펀드 자금으로 외국에 소재한 건물·토지를 매입해, 펀드 운용 기간 중 임대 수익과 펀드 만기 시 건물·토지 매각 차익을 챙기는 구조다. 만기를 미룬다는 건 좋은 가격을 제시할 원매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미다. 부동산이 팔리기 전까진 평가손실은 있지만, 실현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 전경. /뉴스1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만기 도래하는 해외 부동산 펀드는 5~6개다. 대표적인 건 ‘한국투자도쿄한조몬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이다.

이 펀드는 일본의 국회의사당, 재무부 등이 있는 도쿄 한조몬 지역에 있는 신축 오피스 빌딩에 투자한 상품으로 오는 6월이 만기다. 해당 건물은 위워크 재팬(WeWork Japan)이 임차인으로 있으며, 펀드 설정 규모는 약 620억원이다. 최근 1년 수익률은 8.18%, 설정일 이후는 28.77%다. 이 펀드는 일단 아무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오는 7월엔 이지스글로벌공모부동산투자신탁281호가 만기를 맞는다. 이 펀드는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에 투자하는 펀드로, 모집 금액은 약 2400억원이다. 이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18.83%, 설정일 이후로는 13.81%다.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의 투자 자산 위치.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 투자설명서

해외 부동산 펀드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했다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올해 해외 부동산 펀드의 실현손실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피렐리 타이어 주식회사의 연구·개발(R&D) 건물에 투자한 한국투자밀라노부동산투자신탁1호는 원래 올해 2월이 만기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수익자 총회를 열고 만기를 2027년으로 연장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 역시 지난해 10월 수익자 총회를 열어 펀드 만기를 2년 연장했다. 이 펀드들의 최근 1년 수익률은 각각 -8.31%, -82.04%다.

당장 다음 달이 만기라 급하게 수익자 총회를 연 펀드도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항공우주국(NASA) 본부가 입주한 건물을 자산으로 한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는 이달 29일 수익자 총회를 열고 만기를 5년 미루는 안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한국투자밀라노부동산투자신탁1호의 투자 구조. /한국투자밀라노부동산투자신탁1호 투자설명서

펀드가 만기를 미루는 이유는 당분간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금리 상황이 지나면 펀드의 손실이 줄거나, 최상의 경우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받은 자금과 현지 대출을 합쳐 외국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는 구조다. 투자 기간 중엔 이 건물에서 나오는 임차료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 만기는 통상 5~7년이다.

펀드 만기 시점이 다가오면 펀드는 해당 건물을 매수할 투자자를 찾는다. 건물을 매입할 때 들인 돈과 매각해 챙긴 차익이 펀드의 수익이 된다. 차익이 나면 펀드는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지만, 반대로 건물을 산 값보다 싸게 팔면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된다.

현재 해외 부동산 펀드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건물 가격을 높게 쳐주는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물을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거나 펀드의 건물 매입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만 있는 것이다.

PC를 이용해 재택근무 하는 모습. /조선DB

이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오피스 빌딩의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오피스 상황이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회사 오피스가 아예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2~3년 이내에 고용주와 노동자의 상황이 역전돼 오피스 시장이 회복한다면 지금보다는 펀드 수익률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업률이 최근 50년 중 가장 낮을 정도로 현재는 노동자가 우위에 있지만, 수년 내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고용주가 우위일 때가 오면 오피스 공실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었다는 점 역시 펀드들이 버티기 전략에 돌입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5.25~5.50%로, 17년 만에 최고치다.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탓에 부동산 투자 수요가 줄었는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금리가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가 이르면 오는 5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 부동산 펀드들은 대부분 임차인이 확실한 물건들”이라며 “규모 면에서도 ELS만큼의 여파가 있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상반기 만기를 맞는 홍콩H지수 ELS는 10조원이지만, 해외 부동산 펀드는 수천억원 수준에 그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