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거장이 숨결 넣은 건물서 미술 거장이 빛난다
이탈리아 현대미술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는 캔버스 위에 쓱쓱 칼자국을 낸 회화로 유명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의 속도가 빨라진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세상의 속도와 비슷한 에너지와 역동성을 창조한다’는 ‘공간주의’ 원칙을 토대 삼아 작업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칼자국은 평면의 캔버스를 확장한 공간의 무한함을 상징한다.
한국 미술관 최초로 폰타나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가 강원도 강릉에서 개막했다. 강릉시 교동공원에 새로 들어선 솔올미술관이 개관전으로 마련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이다. 폰타나가 1947년 이후 제작한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 등 대표작 21점을 펼쳤다. 미술관 위탁운영을 맡은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루치오 폰타나 재단과 협업해 기획했다.
폰타나는 요즘 유행하는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를 조형적으로 실험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1947년 ‘공간주의 선언문’을 발표한 그는 오로지 형태와 색, 소리의 조형성을 공간에 담아내고, 거기에 감상자의 움직임을 더해 작품을 4차원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했다. 그 결과, 빛을 이용해 공간 개념으로 작품을 확장시킨 ‘공간 환경’ 연작이 탄생했다. 전통 회화가 지닌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에 구멍을 내거나 칼자국을 낸 연작도 이때 나왔다. 공간주의를 대표하는 회화 작품인 ‘베기’ 연작과 캔버스에 구멍을 뚫은 ‘뚫기’ 연작, 돌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을 베거나 뚫은 조각 연작을 1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미술관 로비 천정과 2전시실에 설치된 ‘공간 환경’ 연작 6점이다. 마치 캔버스를 찢은 것처럼 하얀 벽에 칼자국을 내거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네온 형광이 빛나는 설치 작품이 아시아 처음으로 전시됐다. 1940~60년대 당시 공간과 네온 설치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빛과 공간으로 확장된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작품의 일부가 된다.
폰타나 전시와 함께 한국 작가 곽인식(1919~1988)의 작품을 소개하는 ‘In Dialog: 곽인식’도 나란히 열린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미술계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의 대표작 20여점이 3전시실에 소개됐다. 동판을 찢은 그의 작품은 얼핏 보면 폰타나와 닮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다. 한주희 큐레이터는 “폰타나가 예술 작품이 갖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공간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면, 곽인식은 재료에 수행적인 행위를 가하며 물성과 자신의 관계에 집중했다”며 “서로 닮아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두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대화를 풀어내고자 했다”고 했다.
솔올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00여㎡ 규모로 문을 열었다. ‘백색의 건축가’로 유명한 리처드 마이어(90)가 설립한 건축회사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를 맡았다. 진입로를 시작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발 62m 높이에 백색의 미술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빛을 활용한 흰색의 건물을 건축하는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을 설계했다. 마이어는 현재 은퇴해 이번 미술관 건축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백색 콘크리트와 직선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 색깔이 반영됐다.
‘소장품 없는 미술관’을 표방한 솔올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은 “그 첫 프로젝트가 폰타나와 곽인식”이라며 “두 작가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다른 동시대 두 미술가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두 전시 다 4월 14일까지. 미술관 입장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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