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등장 마약 사범은 연예인·재벌·의사… 사실은 90%가 보통 사람
“한번 해 볼래?”
친구나 동료들 눈이 모두 나를 향한다. 굳이 하고 싶진 않지만, 싫다고 하면 어쩐지 무리에서 소외될 것 같다. 전부 하는데, 나만 끝까지 안 한다고 빼기도 그렇다. 몸에 나쁘다고 들었는데, 보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망설이자, 오히려 친구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호기심에, 같이 어울리기 위해,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고 ‘한 번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눈 딱 감고 해 본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럽다. 심지어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웃으며 내 등을 두드리며 손뼉을 친다.
“어때? 할 만하지.”
다들 이렇게 술이나 담배를 처음 접한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술에 취한 상태로,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때,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옆에서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져” “오늘처럼 기분이 엉망일 때 딱이야” “너도 한번 해봐. 괜찮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권한다. 술에 취해서, 호기심에, 주위에서 하니까, 나만 안 하면 소외될 것 같아서, 같이 하자고 졸라서. 사회생활 하면서 남들이 다 하기에, 강요에 못 이겨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동조 압력(peer pressure)이다. 특히 술을 과하게 마신 상태에서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면, 용감해져서 무단 횡단을 하거나 심지어 남자는 다 같이 나란히 서서 길에다 소변을 보기도 한다. 나중에 술에서 깨고 나서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며 후회하는 그런 실수를 다들 한 번씩 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나 직장에서 친구나 동료가 몰래 뭔가를 먹고 있으면 없던 호기심도 생긴다. “혼자 뭐 좋은 거 먹냐? 같이 먹자.” 친구가 나에게 나쁜 것을 권할 리가 없다. 거기다 하고 있는 친구도 괜찮아 보인다. 오히려 신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한다니까, 믿고 한번 해 본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는다. 마약에 관한 가장 충격적 장면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켄싱턴 좀비 거리’였다. 마약중독자 수백 명이 비쩍 마른 몸에, 붉게 충혈된 초점 잃은 눈으로, 무릎과 어깨, 팔꿈치 관절이 꺾인 채 비틀거렸다. 이들은 이미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마약을 하여 완전히 중독된 상태다. 미국 켄싱턴 좀비 거리 외에도 한국 언론에 나오는 마약중독자는 대부분 연예인 아니면 재벌, 의사 등이다.
검찰청의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마약 사범 중 예술·연예 분야 종사자 비율은 0.4%밖에 되지 않는다. 연예인과 함께 단골처럼 보도되는 의료진 또한 0.9%에 불과하다. 마약 사범의 다수는 무직(31.5%), 회사원(6.2%), 노동자(4.3%), 학생(3.0%) 순이지만, 언론은 항상 연예인, 재벌, 의사 등만 보도한다. 한 현직 경찰이 “일반인 10명 마약 투약한 것보다 진짜 유명 연예인 한 명 마약 투약했다는 게 언론에서 문제 삼기에 좋다”고 말했듯이, 독자들 관심을 끌려는 것이다. 이런 자극성 기사는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머릿속에 “마약은 이상한 사람이나, 연예인이나 재벌, 의사가 주로 한다. 즉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 마약을 하는 다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고, 유명 인사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이들도 심각한 중독 환자를 제외하고는 채용 검진 등에서 실시하는 마약류 검사에서 우연히 마약이 나온 경우로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전혀 알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모두가 ‘예스’라고 하는데, 나만 ‘노’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래 집단이 가장 중요한 10~20대라면 더욱 그렇다.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느끼기도 하고, 사회가 정한 규칙이나 규범을 어기는 것이 대범하고 멋져 보이기까지 하며 자신들만의 비밀을 공유한 것 같기도 하다. 마약이 나쁘고 무섭다는 이야기만 들어왔지, 이렇게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 건지는 나중에 마약에 빠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마약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을 시작한 계기는 대부분이 자신의 호기심과 타인의 권유다. 보건복지부 설문 조사(복수 응답)에 따르면 무려 3명 중 2명(66.7%)이 호기심으로, 5명 중 3명(60.6%)은 다른 사람의 권유로 시작한다. 마약을 처음 구입한 경로 또한 4명 중 3명이 지인(76.7%)이었다. 연예인이나 재벌 3세가 마약을 한다는 언론 보도나, 범죄자들이나 마약을 하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나의 호기심이나 남의 권유로, 마약상이 아니라 친구가 건넨 마약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명이 하면 마약은 마치 감염병처럼 퍼져 나간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친구 따라 마약 한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마약, 특정 연예인이나 재벌과 좀비, 영화에서 보는 범죄자와 현실에서 접하는 마약은 완전히 다르다. ‘친구들이 하니까’ ‘좋아 보여서’ ‘어울리려고’ ‘한 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젊은 나이에 장난처럼 가볍게 시작한 마약의 결과는 무겁고 또 무섭다. 단 한 번 호기심은 결국 감옥, 자살, 사망으로 이어진다.
마약 문제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매번 앵무새처럼 처벌을 더 강화하겠다고 발표한다. 최근에도 10대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자,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팔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양형 기준을 강화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런 단순 처벌 강화책이나 자극적 언론 보도는 정작 옆에 있는 친구가 “한번 해 볼래”라고 마약을 권할 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마약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마약에 좀비, 연예인, 재벌과 같은 특정 이미지를 심어주는 대신, 가장 먼저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마약을 어떻게 시작하고, 왜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친구나 지인이 권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고, 마약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교육은 마약이라는 감염병을 막는 백신이다.
첫 마약은 지인에게 구입 77%…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친구 따라 마약 한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나쁜 왕비는 매부리코에 눈에 살기를 띤 할머니로 변해 착한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독사과를 건넨다. 인어공주의 마녀 또한 다리가 여럿 달린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외모가 흉측한 사람=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심어진 상태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유괴범에 대해 교육할 때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고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은 동화에 나오는 무섭고 흉악하게 생긴 이들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눈에 띄어서 경계 대상이 되기에 아이들을 유괴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괴범은 평범한 외모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다른 범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대부분 외모가 평범하다.
우리는 범죄 가해자의 외모를 특별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생판 모르는 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범죄에서 가해자는 타인이 아닌 지인이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는 아는 사람이 60~70%, 친족이 20%를 차지한다. 검찰의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살인 사건 또한 친족(32%), 이웃·지인(24.1%), 애인(12.1%), 친구·직장동료(6.7%) 순으로 타인은 19%에 불과하다. 마약 또한 지인이 권유하는 경우(76.7%)가 대부분이다. 특별한 사람(somebody)이 아니라, 누구나(anybody)가 범죄를 저지르고, 낯선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 마약을 권한다. 그러기에 마약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과 위험만 강조하는 교육은 전혀 효과가 없다. 마약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올바른 교육이다. 악이 그러듯, 마약은 평범하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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