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90>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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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는 유명한 석가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탑은 1966년 탑 속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훔치려던 도굴꾼들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는데,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리와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이 담긴 사리장엄구가 출토됐다.
이 사리호는 기구한 사연을 거쳐 부산박물관에 자리 잡았다.
사리호를 봉안했던 불상은 1947년 산청 석남리에 사는 이성호 형제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험준한 벼랑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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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는 유명한 석가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탑은 1966년 탑 속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훔치려던 도굴꾼들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는데,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리와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이 담긴 사리장엄구가 출토됐다. 사리장엄구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기에 도굴꾼의 표적이 되고, 불교계는 물론 역사학계와 시민까지 떠들썩하게 한 것일까?
우리나라 사리장엄구 가운데 사리 그릇은 화려하게 금동과 은으로 만든 것도 있고 유리나 수정, 나무, 심지어 곱돌(납석)로 만든 것도 있다. 특히 곱돌로 만든 것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를 중심으로 유행한 독특한 사리장엄구인데, 부산박물관에 그중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바로 영태 2년(永泰二年)명 석제사리호로, 정식 명칭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사진)’다. 이 사리호는 기구한 사연을 거쳐 부산박물관에 자리 잡았다. 사리호를 봉안했던 불상은 1947년 산청 석남리에 사는 이성호 형제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험준한 벼랑에서 발견했다. 형제는 이 불상을 옮기려다 여의치 않자 무게를 줄이고자 무릎 밑 대좌와 등 뒤의 광배를 분리해 뜯어 왔다. 이들은 그렇게 가져온 불상을 약 10년 동안 집에 보관하다가 1959년께 내원사(현 덕산사)에 양도했다. 사리호 속에는 청동제 작은 함과 한지 뭉치가 들어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소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1981년 부산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하게 되었는데, 1982년 불상 발견지에서 전문가들이 대좌를 조사하면서 사리호가 해당 불상에 봉안된 것임이 증명됐다.
사리호 표면에는 당시 신라말인 이두문(吏頭文)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두온애랑’이란 분을 위한 불상을 만들면서 그 제작 경위를 적었는데, 불상을 본 사람이나 정례하는 사람, 불상의 소문을 듣거나 이를 듣고 수희(불보살이나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자기 일처럼 따라 함께 기뻐함)하는 사람, 불상의 그림자를 지나간 사람, 불상을 스쳐 지나간 바람이 지나간 곳의 모든 사람이 악업이 소멸돼 스스로 비로자나불임을 깨닫기를 염원하는 글이다. 아주 문학적이고 감각적인 글귀이며, 이는 당시 이두 자료 중 가장 빼어난 완성도를 보이는 이두문 중 하나이다.
더군다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 766년)’ 기년명으로 볼때 곱돌로 만든 사리장엄구 중 우리나라 최초이고, 이를 봉안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로자나불상임이 확인됐다.
함께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인화문호(印花文壺)와 더불어 편년자료가 부족한 고대 고고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으며 1986년 국보로 지정됐다. 부산박물관을 찾아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기를 기원한 그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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