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서 죽은 빌런, 드라마서 부활… “선악은 닮은꼴” 서사 덧입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킬러들의…’
인물 심리에 집중한 원작과 달리… 악당에 풍부한 사연-성격 더하고
범죄 규모 키워 화려한 액션 선보여… 국내는 물론 일본 등 아시아서 흥행
삼촌 ‘진만’(이동욱)이 남긴 불법 무기 쇼핑몰 때문에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김혜준). 그의 생존기를 다룬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은 원작소설 ‘살인자의 쇼핑몰’(2020년·자음과모음)의 세계를 확장해 악당들의 이야기에 풍성함을 더했다. 악당들을 위한 찰진 각색 덕인지 지난달 17일 공개된 드라마는 4주간 한국 디즈니플러스 TV쇼 1위를 차지했다.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국에서 톱 10에 진입했다. 원작도 이에 힘입어 알라딘 문학 부문 7위에 오르며 역주행했다.
좋은 이야기에서 악당은 주인공과 닮았다. 악당과 주인공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년)에서 조커는 배트맨을 향해 “사람들 눈엔 너도 (나처럼) 미친 놈이야”라고 말한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선 살인 청부업체에서 한때 함께 일했던 주인공 진만과 베일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게 각색됐다. 진만은 일반인을 죽이지 않는다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너(진만)랑 베일이랑 닮은 꼴”이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괴로워한다.
악당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년)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을 이길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성조는 시시때때로 자신이 고아 출신이고, 킬러들은 사선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진만을 배신하고 베일 편에 선 이유를 이렇게 변명한 것이다. 성조를 냉혹한 킬러로만 묘사하는 원작과 다른 점이다. 원작자인 강지영 작가(46)는 14일 인터뷰에서 “원작은 분량이 짧아 다양한 이야기를 넣지 못했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만들어져 악당들의 서사가 더 풍성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액션 장면을 실감 나게 살리기 위해 범죄 규모를 키웠다. 킬러들의 조직 ‘바빌론’이 원작에선 소모임에 불과했지만, 극에선 수백 명이 소속된 글로벌 범죄조직으로 불어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만들어낸 것. 원작에선 총싸움만 벌어지지만, 드라마에선 사방에서 폭탄이 쏟아지고 살인용 드론이 날아다니며 선혈이 낭자한다. 이 감독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드라마를 2, 3배씩 빨리 감기 하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싶었다. 영화 ‘킬 빌’(2003년)과 달리 현실감 높은 액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와 달리 원작은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다. 지안이 자신이 몰랐던 진만의 과거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복잡한 감정 변화는 부모와 화해하는 자식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어렸을 적 부모님은 자신의 어려움을 제게 말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든 뒤에야 부모님의 젊은 시절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작품에는 우리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겨온 부모 세대를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강 작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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