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폐업이 현실로… 자영업자 퇴직금 작년에 1조 나갔다
세종시의 한 노래방은 작년 여름 영업을 중단하고 7개월째 ‘개점휴업’ 상태다. 노래방 주인 황모(41)씨는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부터 금리 7%대 신용 대출과 11%대 캐피털 대출을 포함해 총 2억원을 빌렸다. 그는 노래방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매달 대출 원리금 300만원을 갚으려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했다. 황씨는 “폐업 신고를 하면 일시에 대출금을 상환해야 해서 폐업도 못 하고 다른 업종 창업을 알아보고 있다”며 “코로나 때보다 금리는 올랐고, 손님은 더 줄어든 요즘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경기 침체가 여전한 가운데, 지난해 폐업 사유로 노란우산 공제금을 지급받은 소상공인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공제금 지급이 처음으로 연간 10만건을 넘었고, 금액 규모 역시 사상 처음으로 연간 1조원을 돌파했다. 코로나 때인 2022년 정부가 지급한 1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손실 보상 선지급금’을 올해부터 상환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초유의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연명하던 소상공인들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기 침체 상황 속에 원리금 상환까지 다가오면서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폐업 공제금 지급 사상 첫 10만건 돌파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노란우산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 건수는 11만15건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22년(9만1000건)보다 20.7% 증가한 수치다. 2017년 5만건 정도였던 폐업 공제금 지급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0년 8만2000건, 2021년 9만5000건으로 증가했다. 지급 건수가 늘면서 지난해 공제금 지급액은 역대 최대인 1조2600억원을 기록했다.
노란우산 공제금은 폐업 등으로 일을 그만둔 소상공인에게 그동안 납부한 돈에 이자를 덧붙여 주는 일종의 ‘퇴직금’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07년부터 운영 중인 노란우산 공제는 소기업·소상공인이 매월 또는 분기마다 일정 금액을 내고서 폐업이나 노령, 사망 등의 이유로 생계가 어려울 때 목돈을 돌려받는 제도다. 월 5만~100만원까지 낼 수 있고, 추후 지급 사유가 생기면 원금과 복리 이자를 돌려받는다. 폐업 공제금 지급이 늘어났다는 것은 사업이 망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이 많다는 뜻이다.
한계 상황에 몰린 소상공인들의 공제금 지급 요청은 급증한 반면, 노란우산 가입자 수는 감소 추세다. 2021년 28만8570명이었던 노란우산 가입자는 지난해 24만2875명으로 줄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불황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상공인이 많다 보니 꾸준히 늘던 노란우산 가입자 수가 지난해 꺾였다”며 “공제금을 돌려받고 싶은데 대출금 상환이나 점포 정리에 드는 비용 때문에 폐업 신고를 못 하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줄폐업 이어지면 산업 생태계 무너질 수도”
코로나 때 빌린 대출금 상환 시기가 닥치면서 한계 상황으로 몰리는 소상공인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오는 26일부터 올해 1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손실 보상 선지급금’ 상환이 시작된다. 코로나 때인 2022년 시행된 손실 보상 선지급은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손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정부가 보상금을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피해 정도에 따라 소상공인이 보상금 차액을 갚는 제도다. 가령 거리 두기 강화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정부가 500만원을 먼저 지급하고, 실제 피해액이 150만원으로 산정되면 소상공인은 나머지 350만원을 36개월 분할 상환해야 한다. 26일 1차 손실 보상 선지급액(8340억원) 상환이 시작되고, 3월과 7월 추가 상환까지 더하면 1조300억원 규모다.
정부는 영세 소상공인에게 전기 요금 20만원을 지원하고, 은행권 이자를 1인당 최대 300만원 한도로 환급하는 등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내놓지만,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이 늦어져 소상공인 폐업이 급증하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은 경기가 회복된다고 느낄 수 있어도 상당수 소상공인은 총선 이후 경기 전망이 더 나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폐업 공포가 현실화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란우산 공제
소기업·소상공인이 매월 또는 분기마다 일정 금액을 납입한 뒤 폐업이나 노령, 사망 등의 이유로 생계가 어려울 때 목돈을 돌려받는 제도. 중소기업중앙회가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영세 사업자의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위한 일종의 ‘퇴직금’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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