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22]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
남성복 단추는 오른쪽에, 여성복 단추는 왼쪽에 달려 있다. 단추는 남성복이든 여성복이든 오른쪽에 달려 있는 게 적절하다. 전 세계 인구의 약 90%가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으로 단추를 잡고 왼쪽 구멍에 끼우는 게 편해서다.
한데, 여성복 단추는 왜 왼쪽에 있는 걸까? 17세기 서양에서 첫선을 보인 단추는 고급 의상에만 달렸더랬다. 손수 옷을 입던 부유층 남성들과는 달리 부유층 여성들은 하녀가 옷을 입혀주었다. 오른손잡이 하녀들이 제 여주인에게 쉽게 옷을 입히려면 여성복 단추는 왼쪽에 있어야 했던 거다. 남자는 왼편 허리께에 꽂힌 칼을 뽑을 적에 걸리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추가 오른쪽에 있어야 했다. 하녀의 옷 시중을 받는 여성은 이제 보편적으로 없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여성복 단추는 왼쪽에 있는가? 간단하다. 어느 날 그렇게 정해져 시간이 흐른 무엇은, 원래부터 그랬고 또 무조건 그래야만 하는 사실로 굳어져버리는 것이다. 조작과 무식이 시대의 흐름이 돼 역사로 자리 잡게 되는 원리가 딱 이런 식이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고, 그 생리를 잘 이용하는 악당들이 가짜 뉴스에 의한 가짜 역사를 정사(正史)로 둔갑시켜 정치를 지배한다.
건국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에 대한 ‘악마적 왜곡과 모함’은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하는 여성복의 단추같이 돼버린 터였다. 목적은 분명하다. 이승만이 쓰레기가 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빛나는 존재감 역시 쓰레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적나라한 반(反)대한민국 세력 말고도 가령, 약장사 스타일의 학원 강사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까지 가담되는데 이게 순수한 악의보다 더 더러운 까닭은 그들이 지난 시대의 집단 최면에 빠져 아직도 단추 구멍 속의 어둠을 벗어나지 못해서다. 국립묘지에 있는 이승만의 묘를 파헤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인정 욕구에 평생을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어느 동양철학자처럼 말이다.
고백하건대, 어려서는 혁명만 멋있고 ‘계몽’은 우습게 봤다. 하지만 혁명은 선한 가면을 쓴 악령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잘됐다 싶다가도 이내 여름날 생선처럼 구더기가 득시글거리기 십상인 반면 계몽이야말로 성실하고 섬세한 ‘좁은 문’임을 깨닫는다. 계몽 없는 혁명은 사기고 계몽은 개혁의 실체이며 인간은 계몽으로 거짓을 짓밟는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바로 그러한 계몽을 시작했다. 계몽의 갑옷을 입은 이런 혁명은 이 사회 ‘여러 분야들’에서 ‘또 다른 모습들’로 확장돼야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파시스트의 좌우명이다. 인간과 세상을 장악하려는 거짓들과는 전쟁해야 한다. 역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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