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신중해야

2024. 2. 2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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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상이 타결되던 즈음에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의 기억에는, 그 당시 UR 농산물 협상 타결은 우리나라 농업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식량가격 지지 정책이 과잉생산을 초래하여 막중한 재정 부담을 가져왔던 것이 그 예이며, 생산물량 제한이 없는 원유 최저가격제 시행으로 초래된 우유 과잉생산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우리나라의 경험도 또다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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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상이 타결되던 즈음에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의 기억에는, 그 당시 UR 농산물 협상 타결은 우리나라 농업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많은 전문가와 정책담당자들이 예상하던 농업의 미래는 그야말로 매우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이때 해외에서는 새로 타결된 농산물 협상 조건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전에는 생각지 못하던 새로운 농업정책인 ‘직불제’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책을 도입하기까지 매우 많은 논의와 공감대를 형성한 과정을 보면서 농업을 대하는 국민들의 의식도 우리나라와 많은 격차가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세계의 농업정책에서 일종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앞서 나가는 두 그룹은 단연 미국과 EU이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농업정책 및 농가소득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보험과 직불제이다. 이들이 이 두 가지 농업정책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는 정책에 의한 가격 왜곡을 방지할 수 있다는 학문적 논의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안병일 고려대 교수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농산물가격안정제는 기준가격 이하로 시장가격이 형성될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해 주자는 것이 내용의 골자이다. 이름이 ‘가격안정제’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조치에 대한 내용과는 사실상 관련이 적고 정부가 나서서 최저가격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 법안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는 제도가 가져올 역효과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합리적인 생산자라면 가격이 보장되는 품목만을 재배하고자 할 것이다. 이 경우 가격에 따라 공급이 조절되는, 이른바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가격이 보장되는 일부 품목에 생산이 몰려 과잉생산을 초래하게 된다. 이는 해당 품목의 가격을 폭락시켜 최저가격 보장의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과 시장가격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켜 과중한 재정부담을 초래한다. 정부에 의한 최저가격 보장이라는 시장 개입이 가격을 더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최저가격 보장제도는 과잉생산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도 다수 입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식량가격 지지 정책이 과잉생산을 초래하여 막중한 재정 부담을 가져왔던 것이 그 예이며, 생산물량 제한이 없는 원유 최저가격제 시행으로 초래된 우유 과잉생산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우리나라의 경험도 또다른 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은 형태로 채소 품목들을 중심으로 최저가격 보장제도가 도입되면 막대한 재정투입이 이뤄져야 하고, 대상이 되는 품목들에서는 증산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도 이미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최저가격 보장은 그 성격이 생산 농가의 소득 지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농가 소득 지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저가격보다는 역효과가 적은 대안의 정책들을 도입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와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토론과 공감대를 모색하는 과정을 거친 정책이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적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색 과정이 바로 정책 입안에서 선진국이 갖추고 있는 면모이다. 농가 소득 지지를 위한 여러 수단을 놓고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안병일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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