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계 미술 잇는 공간혁명

강주영 2024. 2.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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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솔올미술관 개관
마이어 설계 새 랜드마크
“예술 작품의 완벽한 배경”
4월 14일까지 폰타나 개관전
공간·빛·경험으로 세계 확장
곽인식, 재료의 물성 탐구

강릉에 새로운 공공 미술관이 활짝 문을 열었다. 현대건축 거장의 철학을 담아 서정적이면서도 겸손한 공간, 예술작품의 완벽한 배경이 되도록 만들어진 미술관에는 앞으로 세계적 수준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미술을 매개로 지역과 한국, 세계미술을 잇는 미학 담론을 펼치고, 지역 미술 생태계에도 새로운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개관전도 이같은 비전에 맞춰 시작했다. 독창적 미술이론을 펼쳐 온 현대미술의 아이콘 루치오 폰타나, 재일 미술가 곽인식이다.

▲ 강릉 솔올미술관 개관식이 19일 미술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 미술관 생태계 새 좌표 희망

강릉 솔올미술관이 19일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14일 관객 입장을 시작한데 이어 이날 미술관의 비전을 밝혔다. 개관식에는 김석모 솔올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김홍규 강릉시장과 에밀리아 가토 주한이탈리아대사, 실비아 아르데마니 루치오폰타나 재단 이사장, 박명자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대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 등 국내 미술계, 건축을 맡은 마이어 파트너스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박선자 강릉예총 회장, 최선복 강릉문화재단 상임이사, 강희문 강릉관광개발공사 사장, 정희준 아르떼뮤지엄 강릉 관장 등도 참석해 새로운 미술 중심 공간의 탄생을 축하했다.

김홍규 시장은 “도시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도록 시립미술관 및 아트센터 등과 연계, 역동적인 문화예술 도시 강릉을 다시 빛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석모 관장은 “우리나라 미술관 생태계에 의미 있는 좌표를 찍기 바란다”며 “품격 있고 정제된 전시 콘텐츠로 주요 미술사의 흐름을 보여주고 예술적 영감을 느끼게 하는 대표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현대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회사 마이어 파트너스의 작품으로 그의 건축 철학이 담겨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미국 LA 게티센터 등을 설계한 그의 철학이 강릉의 씨마크 호텔에 이어 다시 한번 강릉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갈 전망이다.

파빌리온 공간 3곳이 감싸는 형식으로 설계된 미술관 건물은 건물 안팎과 각 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주변 환경과도 어우러진다. 개관 준비와 전시기획·전략 수립 등 초기 운영은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맡았다.

▲ 이탈리아 현대미술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 ‘ Spatial Environment with Neon Light ’. 아래는 곽인식 화가의 작품 ‘무제’.


■ 폰타나·곽인식으로 본 세계

“우리는 영원이라는 감각을 불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미술을 물질로부터 분리하고자 한다”- 루치오 폰타나, ‘공간주의-제1차 공간주의선언문’ 중.

개관전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한다는 미술관의 비전과 꼭 맞게 꾸려졌다. 혁명적 시도를 펼쳐온 현대미술 거장들이 장식한다. 전시실 3곳을 개방, 4월 14일까지 열리는 전시다.

먼저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 Lucio Fontana)의 국내 첫 전시를 볼 수 있다. 1·2전시실에서 여는 전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이다. 폰타나는 1947년 혁명적으로 평가됐던 미술이론 ‘공간주

의(Spatialism·전통미술이 추구하는 공간을 거부하고 발전된 색과 형태로 공간을 구현해 미술과 과학을 통합하려한 미술 운동)’로 조명받았다. 당시 발표된 ‘공간주의 선언문’과 설치·회화·조각 27점을 볼 수 있다. 캔버스를 찢는 등 평면 회화를 탈피하려 한 시도가 엿보이고, 라이트 아트, 몰입형 미술 등 실험적 작품도 볼 수 있다. 물리적 공간을 예술의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다. 이를 보여주는 네온 공간설치 작업 ‘공간 환경’ 6점이 아시아 지역 미술관 최초로 소개된다. 공간주의 선언 발표 후 시각적으로 구현된 공간주의 미술을 집중 조명한다. 형태와 색, 소리가 품고 있는 조형성을 공간에 담고, 감상자의 움직임을 더해 작품을 확장시킨다.

캔버스에 구멍을 내거나 칼자국을 내면서 전통 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실의 물리적 공간을 작품의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기획하고 루치오 폰타나 재단이 협력했으며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문화원이 후원했다.

3전시실에서는 프로젝트 전시 ‘재일 In Dialog: 곽인식’을 볼 수 있다. 곽인식(1919∼1988)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미술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을 했다. 그가 물성을 탐구하며 남긴 회화와 조각 20점을 펼친다. 동판을 찢고 봉합하는 등 화면에 변형을 가하고 유리와 놋쇠 등을 캔버스에 붙이는 등 일본에서도 전위적 작가로 통했지만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폰타나의 공간주의를 포함한 서양미술의 흐름을 탐구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찾기 위한 실험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단색화 등에도 영향을 준 그의 작품을 재조명할 수 있다. 방법론적으로는 폰타나와 비슷하지만 “사물의 말을 듣는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재료 자체를 통한 고유한 감각으로 물성을 깊이 탐구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다른 동시대의 두 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을 가늠하고 실험하는 자리도 될 것”이라고 했다. 김여진·강주영·이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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