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행정공무원 ‘늘봄 떠넘기기’ 논란… 내달 시행 지장 우려[인사이드&인사이트]
학교서 수업-돌봄 프로그램 제공… 교사들 “학부모 민원 증가 우려
사고라도 생기면 우리 책임”… 교육부, 늘봄실장에 행정직 발령
행정공무원 “학교 일은 교사 일… 왜 공무원에게 떠넘기나” 반발
늘봄학교가 시행되면 초1 정규 수업이 끝난 뒤 희망 학생에 한해 2시간의 무료 맞춤형 방과 후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이후 학교에서 저녁 식사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는 초1을 대상으로 도입해 내년에는 초2, 2026년에는 나머지 모든 학년까지 확대 시행된다.
지금까지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의 가장 큰 고민은 ‘돌봄 공백’이었다. 초교 입학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기본적으로 오후 4시, 늦으면 오후 8∼9시까지도 아이를 돌봐줬기 때문에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면 하교 시간이 오후 1시 정도로 당겨진다. 수업이 끝난 뒤부터 부모가 직장에서 퇴근해 집에 오기 전까지 시간을 대부분 ‘학원 뺑뺑이’로 채우거나 조부모 등 친인척의 손을 빌려 해결해야 했다.
기존에도 ‘초등 돌봄교실’이란 제도가 있었지만 맞벌이, 저소득층 등 우선 선정 요건이 있었고 시간도 오후 7시까지로 늘봄학교보다 1시간 짧았다. 각 시도교육청이나 학교 소속 ‘돌봄전담사’가 아이들을 봐줬는데 돌봄 수요가 늘 공급을 초과해 대기 순번을 기다려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누구나 원하면 모두’ 돌봄 서비스를 받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늘봄학교를 도입했다. 부모의 돌봄 공백을 학교가 적극적으로 채우고 양육 부담을 덜어 장기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늘봄학교는 지난해 8개 시도교육청 소속 459개 초교에서 먼저 시범 운영됐다.
● 교사들, 업무 부담-민원 증가 우려
실제로 지난해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한 459개 초교의 경우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진행할 강사를 구하지 못해 교사가 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도 성명에서 “늘봄학교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관리와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며 “교감이 늘봄지원실장을 겸임하는 학교에선 교사가 늘봄 업무를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이달 17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공교육·공보육 이원화 돌봄 체계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늘봄학교가 돌봄에 가까운 만큼 지자체 공무원들이 늘봄학교 주무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원을 늘려 교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고 설명한다. 이달 초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늘봄학교 추진 방안’에 따르면 1학기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전국 초교에는 기간제 교원 2250명이 한시적으로 배치된다. 이들이 주로 늘봄학교 업무를 맡고 교사에게는 추가 업무를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2학기에는 모든 초교에 ‘늘봄지원실’이 설치된다. 실장은 교감이나 시도교육청 늘봄지원센터 소속 공무원이 맡는다. 기간제 교원 대신 늘봄을 전담하는 실무 직원도 6000명 채용한다. 초2까지 대상이 확대되는 2025년에는 학생 수가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시도교육청 전문직(장학사, 장학관) 또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늘봄지원실장으로 전임 발령낼 계획이다.
● 행정공무원 “교사 업무 줄여주려 공무원에게 전가”
교육부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청 공무원을 늘봄학교에 투입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돌봄 업무는 늘어나는데 이를 담당할 공무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교육청 본부는 이달 6일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구체적인 정규직 전담 인력 확보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갖고 있지 않다”며 “돌봄과 방과후 학교 등 정부 정책이 도입될 때마다 지방공무원들의 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인력 충원도 없었고 업무 폭탄을 맞은 지방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책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늘봄 업무를 전담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물론이고 이들의 정규직 채용에 대한 규정 등도 미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늘봄학교 추진 방안에 따르면 올 2학기부터 배치되는 늘봄 실무 직원은 공무원, 공무직, 단기계약직, 퇴직교원 등을 대상으로 시도교육청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전공노는 교육부가 늘봄학교 업무에서 교사들을 배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방공무원들에 대한 업무 전가”라고 비판했다. 전공노는 14일 성명을 통해 “늘어난 돌봄 시간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해 자원봉사자, 기간제 교원, 비정규직 행정인력을 투입해 빈틈 메우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하며 “교원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얼토당토않은 대책이고 현실성도 부족하다”고 평가절하했다.
● 참여 저조한 서울 “서이초 사건 영향도… 화해 시간 필요”
교사와 공무원들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지역별 늘봄학교 수요-공급 격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 시도 중 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초등생이 많은 서울은 올 1학기 늘봄학교 참여율이 7%(참여 학교 기준)로 전국 최하위다. 시도교육청별 늘봄학교 참여율을 살펴보면 부산(304곳)과 전남(425곳)이 100%로 가장 높다. 경기 73.3%(975개교), 제주 48.2%(55개교), 세종 47.2%(25개교), 충북 39.2%(100개교), 경북 32.1%(152개교), 경남 31.3%(159개교), 대전 30.2%(45개교), 대구 30.2%(70개교) 등이 뒤를 이었다.
부산은 지난해부터 도서관, 주민센터 등 지역사회 공간을 활용한 늘봄 정책을 꾸준히 준비해 왔다. 전남은 농어촌 소규모 학교가 많은데 에듀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학생들의 통학을 지원하고 있다. 또 고학년 학생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저학년 돌봄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때문에 학교나 교사의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서울시교육청 차원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 지난해 7월 발생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교권 침해 논란이 늘봄학교 신청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교 현장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을 모두가 지켜봤기 때문에 교사들의 우려와 저항이 크다는 분석이다. 시교육청도 아직 교사들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교사들의 반대가 큰 늘봄학교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 초교 교사들은 다른 지역보다 트라우마가 큰 편”이라며 “시교육청도 (교사의) 치유와 화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며 각 학교와 조심스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문수 정책사회부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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