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강인 파국에 손놓은 협회[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2024. 2. 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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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손가락에 테이핑을 한 채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을 마치고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카타르=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신예 이강인의 몸싸움으로 축구계가 들끓고 있다.

현존 최고 스타와 떠오르는 미래 스타 간의 충돌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소위 ‘황금세대’의 허상을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한국 축구는 많은 스타를 보유하고도 이를 한 팀으로 엮지 못했다. 구슬 꿰기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선수들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이겠지만, 시스템적으로 보면 가장 가까이서 선수들을 지켜보고 이끌어야 할, 때로는 선수들 간의 규율을 제시하고 심리적으로 조화시키고 이끌어야 할 감독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무능하고 잘못된 리더십이 얼마나 팀을 심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차기 감독 선임을 눈앞에 둔 대한축구협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난 선임 과정을 돌아보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할 당시 의견 수렴, 검증, 최종 선정 등에서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원칙이 무너진 부분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 의사결정 시스템을 넘어 지나치게 개입한 점이 있다면 이 역시 하나의 오류로서 바로잡아야 한다.

제일 시급한 문제는 역시 앞으로 손흥민과 이강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현 상태에서 두 선수를 같이 뛰게 하는 건 힘들다.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을 두 선수를 치유와 화해의 과정 없이 함께 뛰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일뿐더러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선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단순한 행위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심리적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안이 그동안 대표팀에서 유지돼 왔던 훈련 및 합숙 과정에서의 권위적 문화에 대한 반발인지, 혹은 스타 대 스타로서의 자존심 문제인지, 혹은 지나친 자기중심적 인식으로 인한 개인의 일탈인지 등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향후 대표팀 운영 방식에 있어서 필요한 개선점이 있다면 도입하고 필요한 규율을 제시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두 선수는 물론 대표팀 선수 전체에 대한 심리적 접근 방식을 보다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여러 국가가 대표팀에 심리전문가를 파견하여 다양한 대응과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대응과 조치는 선수단의 긴장 완화 및 상호 소통, 성취 동기와 팀워크 강화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이런 과정에서 두 선수에게 필요한 치유책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감독이 직접 전술적 심리적 용병술을 발휘하면서 선수단 관리에 필요한 조치들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선수단 전체에 대한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은 협회의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 협회는 새로운 감독이 오기 전까지 필요한 조치들과 사전 작업을 해야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두 선수를 불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팬들의 관심과 분노가 이렇게 큰 사태가 터졌는데도 협회가 근본 원인도 파악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무책임한 일이다. 이는 대표팀 자체에 아무런 대책과 규율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선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원인 분석과 조치는 필요하다.

이와 함께 두 선수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는데 이런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더라도 면밀한 진상 파악이 먼저 되어야 공정한 징계가 가능하다. 객관적 근거 없는 징계는 당사자는 물론 팬들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협회는 선수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후속 조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 여러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선수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거나 감독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인지, 시간이 흘러 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선수 보호를 위해 진상 조사에서 드러나는 자세한 내용을 공표하지는 않더라도 정밀한 자체 조사를 통해 명확하고 개선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 축구가 파문에 휩싸여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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