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정치영화`가 박수받는 시대 돼야 한다
영화도 하나의 산업이고 문화이기에 사회에 의도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2010년대 들어 사회적인 문제나 현실을 다룬 영화들이 흥행과 공감을 얻으며 정치적인 사건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도가니'는 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다뤄 사회적인 고발과 국민참여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영화가 정치화되어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 시즌만 다가오면 정치영화가 판을 친다. 단순히 대중의 정치적 관심도를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영화산업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 영화·미디어업계는 좌파·진보이념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미디어를 통한 이념 선전선동 현상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는게 현실이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등 좌파진보 성향의 영화 속에서 묘사된 보수 정치인이나 공무원, 군인들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분류될 정도로 허구적 이미지까지 덮어 씌워진다.
"정치색을 제외했다"는 안내 문구와는 달리 특정 이념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지지자 결집, 표몰이 등을 위해 색깔 논쟁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영화 정치'다. 픽션과 논픽션을 교묘히 얼버무려 반대 진영을 왜곡하고 관객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네거티브 기법을 정치영화계에서 더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반대 진영을 공격하기 보다는 자기 진영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포지티브 정치영화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최근 보수성향 영화로서 드물게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건국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역사를 서술하다 보니, 그가 범한 실책들은 가려지는 점이 있어 균형된 역사인식 측면에선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인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경제적·사상적 업적은 엄밀한 사실들이고, 반대 이념에 대한 허구적 왜곡이 적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정치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2018년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사우스사이드 위드 유'라는 정치영화는 본받을 만하다. 버락 오바마가 미셸과 처음 데이트한 날만을 소재로 한편의 영화를 구성했다. 버락 오바마가 시카고 로펌 인턴 시절, 직장 동료이기에 데이트를 꺼리는 미셸을 불러낸다. 커뮤니티 봉사활동을 핑계로 불러내 하루종일 함께 다니며 사실상의 데이트를 한다. 지역사회 현안을 놓고 지방 의회와 갈등을 겪는 주민들이 한 교회에 몰려서 의회를 성토하고 있다. 여기를 방문한 오바마는 미셸을 앞에 두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다. 주민들을 화해와 통합의 길로 단번에 이끄는 오바마의 연설을 목격하고 미셸은 호감을 느낀다. 뒤이어 영화를 보러간 두 사람은 영화관 앞에서 자신들이 다니는 로펌의 파트너와 우연히 마주친다. 직장 내 데이트 소문이 날까봐 민감해하던 미셸은 자신이 좋아하는 초컬릿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오며 미안해하는 오바마를 보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도 지금의 갈등 시대를 건너 오바마 같은 지도자를 만나는 시기가 곧 오길 기대해본다. 사실 오바마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도 없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이런 사람을 지도자로 발굴하고 키워내는 정치 환경이다. 포용, 소통, 다원적 가치, 이성과 감성의 조화, 커뮤니티 정신. 이런 것들이 우리 정치엔 걸음마 단계다. 걸음마 단계로 돌아간 우리 정치를 보고 영화산업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선진사회는 역사적 사실을 균형감 있게 확정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사회다.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사실에 근거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은 사회의 질서와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확정할 수 있는 사회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의 역사적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영화산업은 프레임 씌우기, 선전선동, 문화전쟁의 질곡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우스사이드 위드 유'와 같이 자기 진영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정치영화가 박수받는 시대가 곧 오길 바란다. 균형된 시각에서 역사적 사실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은 모두가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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