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항공모함 아닌 쾌속정 … AI 시대 교육개혁 치고나갈 것"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4. 2.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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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재대 교육실험
염재호 총장 인터뷰
미래 인류의 핵심은 '유희'
생산성 향상시킬 AI의 발달
하고픈 일로 성공할수 있어
호기심 북돋는게 교육 핵심
재능 70~80%는 육성 가능
교육 실험 '작은 대학' 유리
아이디어 신속히 정책으로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100의 능력을 가진 학생을 뽑아 400, 500으로 키워 졸업시키겠다"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태재대에서 염 총장이 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의대 열풍'을 넘어 '의대 광풍'이 불고 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다. 서른 넘은 직장인이 늦깎이 도전에 나서는가 하면 초·중학생 학부모는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지방 유학까지 불사할 태세다.

최근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발달로 지금 의사들이 하는 일의 80% 정도는 뒤바뀔 것"이라며 "나중에도 의사가 보수와 안정성을 보장해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영상의학에선 이미 'AI 침공'이 가시화됐다. 의료 AI 기업 루닛의 제품은 40여 개국 3000여 곳 의료기관에서 쓰인다. 인간 의사의 진단보다 낫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염 총장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되면 개업의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라며 "이제 사람 살리는 걸 소명으로 아는 이들만 의사를 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변호사, 회계사, 번역가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상 화이트칼라 전체가 사정권이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속 문장이 "AI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로 진화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염 총장 생각은 다르다.

AI 발달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본다. 생산성이 크게 늘며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놀이'를 하며 살게 될 거라고 전망한다. 그는 "미래 인류는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가 아니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일 것"이라고 했다. "막내 아이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런닝맨'입니다. 거기 출연자들 일이 뭡니까? 어떻게 보면 노는 거죠. 그러면서 돈을 제일 많이 벌죠.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집니다. 앞으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할 겁니다."

태재대는 AI 시대 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다. 웬만한 일은 AI가 해주니 '무엇을 잘하는지'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진다. 태재대는 유럽 문명사, 실리콘밸리 투어 등 다양한 교과·비교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꿈 찾기를 돕는다. 염 총장은 "호기심을 북돋는 게 태재대 교육의 핵심"이라고 했다. 향후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AI가 내재화될 것으로 보고 전공과 학부 체제도 미래 변화에 맞춰 재구성할 계획이다. 염 총장은 "'AI 기반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스탠퍼드'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아이비리그보다 200년 이상 늦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버드대·예일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프레더릭 터먼이라는 걸출한 공대 학장이 부임한 뒤 공학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 창업을 장려하며 수십 년 새 급성장한 덕분이다. 터먼 정신을 좇아 구글, 넷플릭스, 테슬라 등 무수한 혁신기업이 탄생했고 그는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염 총장은 "스탠퍼드대가 안 하는 일, 못하는 일을 태재대가 하겠다"며 "AI 기반 교육을 무기로 하버드대·스탠퍼드대 대신 태재대에 오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창조적·비판적 인재 양성도 태재대 교육 목표다. 일각에선 이들은 원래 타고나는 것이지 과연 길러질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본질상 자유분방하고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염 총장은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안에 있는 재능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라며 "타고나는 것이 20~30%이고, 70~80%는 길러질 수 있다"고 했다. "태재대라는 좋은 환경은 학생들에게 굉장한 축복입니다. 소위 명문대가 보통 100의 능력을 가진 학생을 뽑아 150으로 만들어 내보낸다면, 태재대는 400, 500으로 키워 졸업시킬 겁니다."

2학년 때부터는 해외 현장학습도 진행한다. 학생들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한 학기씩 순회하며 체류하는 국가와 도시, 그리고 역사를 깊게 탐구할 예정이다. 미국은 왜 총기 규제를 못 하는지, 중국이 코로나19 시기 장기간 봉쇄 조치를 시행한 배경은 무엇인지 등이다. 일본 메이지유신,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과정도 공부한다. 염 총장은 "한국을 둘러싼 이 나라들이 어떻게 20세기 4대 강국이 됐고 그 당시 리더들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살펴보길 바란다"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제국에 대해 배우며 글로벌 리더로 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5~2019년 고려대 총장 시절에도 그는 교육 혁명을 시도했다. 다학제 융합교육을 골자로 하는 '미래학부' 설립을 추진했다가 학내 구성원들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태재대 초대 총장으로 와서는 액티브 러닝·20명 이하 소규모 수업 등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염 총장은 "고려대가 항공모함이라면, 태재대는 쾌속정"이라고 했다. 고려대 총장은 영향력이 더 크지만 이해관계자도 많아 무엇 하나 바꾸기 쉽지 않은 반면, 태재대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고 작은 조직이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염 총장은 "완전히 새로운 교육을 해볼 수 있고 설득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올해 예순아홉인 그는 머리칼도 눈썹도 희끗희끗했지만 눈빛만은 대선 TV토론 사회를 보던 젊은 시절 꼭 그대로 형형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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