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금융 ‘시즌3’ 개막?…은행권, ‘20조원 기업금융’에 한숨만

정윤성 기자 2024. 2. 19. 17: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76조원 기업금융 지원에 5대 은행 20조원 부담하기로
지난해 3조원 상생금융…“취지 공감하지만 올해 리스크 多”
홍콩ELS·대손충당금 등 난관 산적…건전성 우려도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은행권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올해에도 계속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76조원 규모의 기업 금융지원 방안에 5대 은행은 약 20조원을 분담하기로 했다. 지난해 3조원에 가까운 상생금융 지원에 이어 올해에도 수조원의 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은행권에선 건전성 우려가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금리 상승기가 마무리 국면이고, 홍콩 ELS 검사 결과, 대손충당금 확대 등 다양한 리스크가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가운데 정부의 팔 비틀기가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생금융 '시즌2' 이후 2개월 만에 이번엔 기업금융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기관, 시중은행 등과 함께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첨단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20조원, 중견기업 15조원, 중소기업 40조6000억원 등 총 76조원을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지원하고 첨단산업 확대를 통한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취지다.

이 가운데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전체 지원 규모의 4분의1 수준인 약 20조원을 맡는다. 5대 은행은 중견기업 전용 저금리 대출프로그램에 각 1조원, 신산업 진출 중소기업을 위한 우대금리 혜택을 위해 각 1조원 등을 부담한다. 아울러 5%를 초과한 대출금리를 감면해주는 5조원 규모의 금리인하 특별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각 은행이 최대 5000억원씩 출자하는 은행권 공동 중견기업전용펀드도 도입한다.

산술적으로 각 은행들이 4조원씩 부담하는 가운데 은행권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 압박이 해가 지나도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정부가 은행권을 향해 '돈잔치', '이자장사' 등 비판을 이어갔고, 정치권은 횡재세 도입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은행권은 지난해 상반기 8000억원, 하반기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내놓으며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상생금융에 참여했다. 5대 은행은 지난해 4분기 실적에 2100억~3500억원 규모의 분담금을 비용으로 반영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금융 지원을 위해 수조원대의 자금을 지출해야 하는 은행권은 불편한 기색을 못내 감추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상생 금융 취지에 공감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 방식을 추구하려고 한다"면서도 "그러나 올해 가계부채 억제 기조나 각종 리스크 관리로 인해 경영 안정성을 높이는 보수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 압박이 반복되면서 건전성에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대 은행은 14조102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실적 발목 잡을 변수 산적…"자금 투입하는 지원책만 요구"

지난해 5대 은행은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전년보다 2.6% 증가한 14조102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모두 전년보다 순이익이 늘며 호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총 영업이익 44조3262억원 중 이자이익이 93.4%를 차지하며, 대부분 실적을 이자로 선방했다.

올해 전망은 다소 어둡다. 금리 상승기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자 이익 축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은 비이자이익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변수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변수로는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꼽힌다. ELS 등 투자 상품에 대한 수수료 수익이 비이자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30%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은행들은 ELS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투자 상품들의 판매가 위축될 경우 비이자이익 제고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셈이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2차 검사 결과도 초미의 관심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부터 홍콩 ELS에 대한 2차 연장검사에 돌입했다. 블완전판매라는 검사 결과가 나올 경우 배상금으로 조(兆) 단위의 비용 지출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대손충당금 확대도 부담이다.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늘릴 것으로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5일 손실 인식을 미루는 금융기관은 시장 퇴출도 불사하겠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5대 금융그룹의 대손충당금 전입액은 11조949억원으로 전년 대비 83.2% 급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지원책이 구성되다 보니까 경영적인 부담이 커진다"면서 "압박만 하는 것이 아닌 은행 상황도 고려한 지원책으로 머리를 맞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