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처방, 엄마처럼 걸러줘야"…계정 공유하는 간호사들 '한숨'

성시호 기자 2024. 2. 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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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자기들 바쁘다며 EMR(전자의무기록) 계정을 알려주고 대신 처방을 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의사의 계정을 아는 배경에 대해 "의사들이 병동에 와서 은근히 컴퓨터 뒤에 (의사 본인의 계정을) 붙여놓거나, '바쁘니까 자기 계정을 알려줄테니 대신 처방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ID와 비밀번호를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간호사의 대리처방과 병원 전산망 내 의사 계정 공유가 빈번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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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논쟁 와중 '의사 ID대여' 또 수면 위로
19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사진=뉴스1

"의사들이 자기들 바쁘다며 EMR(전자의무기록) 계정을 알려주고 대신 처방을 내달라고 한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간호사들의 업무부담이 더 가중되면서, 간호사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의료계의 각종 부당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로 들썩이고 있다. 의사가 병동 간호사에게 대리처방을 사실상 종용하고, 이를 위해 병원 내 처방용 계정을 암묵적으로 공유한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의료현장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을 동시에 위반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19일 보안업계에 따르면 지난 17~18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여러곳에선 간호사의 '오더 거르기' 업무를 소개하는 글이 10만회 이상 조회됐다. 병동 간호사들은 교대로 근무하면서 입원 환자에게 내려진 처방내역을 정리해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하는데, 이 글의 작성자 A씨는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오더)을 검토한 뒤 잘못된 부분을 걸러내 정정하도록 요청하는 게 자신이 경험한 병동 실무라고 설명했다.

의료법령에 따르면 환자에 대한 처방권은 통상 의사가 갖는다. 하지만 A씨는 "담당 간호사가 의사에게 (수정된) 처방을 내라고 계속 말하다가 안 되니까 결국 의사 계정으로 처방 시스템에 들어가서 직접 처방을 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의사의 계정을 아는 배경에 대해 "의사들이 병동에 와서 은근히 컴퓨터 뒤에 (의사 본인의 계정을) 붙여놓거나, '바쁘니까 자기 계정을 알려줄테니 대신 처방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ID와 비밀번호를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A씨는 잘못된 처방이 나오는 원인이 의사가 개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세트 오더(미리 정해진 처방)'를 복사해 붙여넣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은 병동 환자가 40명이면 하루 30명꼴로 오더를 거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하나 엄마처럼 (오더를) 걸러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병동 업무가 마비된다"고 했다.

A씨의 글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소개돼 댓글이 600건 이상 게시됐다. 이곳에서 간호사로 인증된 사용자들은 "나도 내내 저렇게 일했다", "훈련받을 때 맨 처음 외운 게 의사 계정이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소속으로 인증된 한 사용자는 모 상급종합병원을 가리켜 "인턴 (의사) 계정은 간호사 공용이라 비밀번호가 'qwert12345' 아니면 '12345qwert'이었는데 이젠 바뀌었나 모르겠다"는 댓글을 적기도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발간한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의 개인정보는 민감정보 또는 고유식별정보가 대부분이다. 의료기관은 관련 법령에 따른 안전성 확보조치로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담당자별로 계정을 부여한 뒤 계정이 공유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개인정보위는 관계자에 대해 형사고발·과징금·과태료 처분을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간호사의 대리처방과 병원 전산망 내 의사 계정 공유가 빈번한 실정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022년 9월 산하 병원노조 지부 99곳에 대한 의료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국 의료기관 97곳 중 73곳(75.2%)은 간호사들이 의사의 계정으로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병동 간호사 B씨는 이날 머니투데이 기자에게 "의료사고시 책임소재 탓에 대리처방을 환영할 간호사는 없지만, 암묵적 관행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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