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자기 빚어내기

2024. 2. 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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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2000년 전 문서를 공부하여 학위를 했다.

이후 그것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전공'이 아니라 관련 분야의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전공을 위한 기초 단계로 교양 과정을 여기거나 대충해도 되는 공부로 안다.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전공'에 매몰되었을 가능성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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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2000년 전 문서를 공부하여 학위를 했다. 이후 그것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전공'이 아니라 관련 분야의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러면서 교양이라는 익숙한 줄 알았던, 그러나 놀랍고도 중요한 세계를 새로이 만났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전공을 위한 기초 단계로 교양 과정을 여기거나 대충해도 되는 공부로 안다. 이러한 교양 경시는 일부 교수들도 가지고 있다.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전공'에 매몰되었을 가능성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교양을 보는 시선이 그러하니 학교 본부도 교양 과정을 소홀히 하거나, 이를 전담하는 교수에 대한 차별적 대우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한 비판이나 불평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교양의 중요성을 말하기에도 지면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교양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필수적인 지식의 습득이다. 유치원생은 녹색불에 건너고, 빨간불에 멈추어 서야 한다고 배운다. 그것은 필수적인 지식이며, 유치원생의 교양이다. 그것을 배우지 못하면 삶이 아슬아슬하다. 성인이 사회에 살면서 알아야 할 필수 지식은 교양에 속한다. 그것을 모르면 삶이 위태하다. 둘째, 그 필수적인 지식의 학습, 구성, 비판, 소통, 적용, 활용, 확장 등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교양에 속한다. 이른바 창조·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능력, 질적·양적 추론, 도덕적 추론, 협업 능력 등을 교양 과정에서 기른다. 그것은 AI에 쉽게 대체되는 능력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인성 교육이라고 흔히 부르는 교양 영역이 있다. 이 인성 교육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회성 교육으로 부를 수 있는데, '나와 너와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품성에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네트워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네트워크가 부서지면, 거기에 속했던 모든 존재가 공멸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빚어가며 인격 및 내면의 통일성과 신실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된 관심이 삶의 의미 및 가치다. 우리 사회는 바로 이 자신을 빚어가는 교육의 근원적 차원에 매우 소홀하다.

생존을 넘어 진실로 '잘 살려(eudaimonia)'는 사람은 외부 자극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도리어 쾌와 불쾌, 손실과 이득, 명예와 수치 등 감각적 판단과 사회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역사와 초월을 깊이 생각하며 이상적 인간 형상을 그린다. 그리고 그 형상으로 자신의 삶을 빚어내기를 쉬지 않는다. 부단히 그런 자기 빚음에 매진하는 이를 진실한 의미에서 '교양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모든 것이 돈과 이익으로 환원되는 시대라 하여도 '쓸모'에 대한 강박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며 참된 인간 형상을 그려가는 인류의 오래된 노력이 여기서 끊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교양인으로 초청받았다.

[김학철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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