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넘기니 美부동산 쇼크…‘만기 폭탄’에 떠는 증권사들
은행보다 증권사가 더 취약…“손실금액 적지만 위험은 더 커”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금융증권업이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해외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인한 실적 쇼크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5대 금융그룹의 관련 투자 평가 손실은 1조원을 넘겼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2021년 전 세계적 부동산 호황기를 타고 몸집을 키운 탓에, 손실금액은 더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금융사보다 위험성에 더 많이 노출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투자 금액 자체는 적은 편이지만, 증권사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 자산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라서다. 해외 부동산 투자 상품의 만기도 홍콩ELS 상품과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래할 예정이라,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멀어진 '뉴욕 건물주'의 꿈…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률 급증
19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해외 부동산에 대출이나 투자 형태로 집행한 금액은 20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7조5300억원, 증권 3조5800억원, 생명보험사 2조7600억원, 손해보험사 1조6800억원 순이다.
이 가운데 대출 채권을 제외하고 수익증권이나 펀드 등의 형태로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은 10조4000억원 수준이다. 현재 이 자산들의 평가 가치는 9조3400억원으로, 원금보다 1조1000억원 줄어들었다. 최근 북미권을 중심으로 오피스텔 등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는 상황이라, 관련 투자 평가 가치는 더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투자 금액만 놓고 보면 금융권이 위험하지만 상품 구조를 살펴보면 증권사의 손실 위험이 더 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방식이 위험성이 큰 지분 투자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보고서에서 "증권사는 대체로 먼저 자기자본을 통해 자산을 먼저 인수하고 이를 국내 기관에 넘기는 셀다운(재매각) 형태로 영업한다"며 "증권사 장부에 남게 되는 자산은 팔리지 않은, 질적으로 낮은 자산일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25개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가운데 투자 위험도가 높은 '부동산 펀드 및 리츠‧투자' 형태가 8조3000억원 규모로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조8000억원 손실을 실적에 이미 반영했으며, 나머지 3조6000억원에 대한 추가 손실 발생 위험이 남아있다.
위험성 큰 증권사 상품에 '비상'…올해부터 만기 도래
통상 해외 부동산 투자는 기관투자자 위주로 이뤄지지만, 개인 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16년 국내에서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처음 판매한 '맵스9-2호' 펀드의 현재 수익률은 -43.87%다. 지난해 11월9일까지만 해도 20%대이던 수익률은 이튿날 -51.01%까지 폭락했다. 펀드가 투자했던 오피스 빌딩을 매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건물별로는 KB증권이 2014년 10월 미국 뉴저지의 한 빌딩에 179억6800만원을 수익증권 형태로 투자했는데, 현재 이 건물의 평가 금액은 10억7500만원까지 떨어져 손실률만 94.02%에 달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펀드의 만기가 올해에 집중적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변수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관들의 해외 부동산 펀드 신규 설정액은 2019년 11조6000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체로 펀드 만기가 5년임을 고려하면 이 때 설정한 펀드의 만기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홍콩 ELS 문제와 관련해선 판매 금액이 적어 상대적으로 비난 여론의 초점에서 벗어나있던 증권사들이, 앞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과 관련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위험 관리에 나섰다. 다만 해외 부동산 문제가 '제2의 홍콩ELS 사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해외부동산 펀드 투자는 만기가 분산돼 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있다"면서 "피해 규모가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손실흡수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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