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직 중엔 공소시효 정지된다 [성한용 칼럼]
성한용 | 선임기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불소추 특권이 있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1948년부터 헌법에 있는 조항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국외로 나가 5년 뒤 하와이에서 서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26으로 서거했다.
범죄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대한민국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8 쿠데타에 대한 고소·고발이 잇따랐다.
검찰은 12·12 군사반란 수사 결과를 1994년 10월29일 발표했다. 공소시효 15년이 1994년 12월12일로 완성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 개정 전까지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
검찰은 전두환씨는 반란 수괴, 노태우씨 등 17명은 반란 모의 참여 및 중요 임무 종사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기소할 경우 재판 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론 분열과 대립 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악용한 검찰권 남용이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시 사법연수원생으로 변호사 실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서울변호사회 설문 조사에서 익명으로 “12·12가 내란죄가 안 된다면 헌법 규정상 재직 중 소추할 수 없으니 그 기간은 공소시효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썼다. ‘대통령 재직 기간 공소시효 정지’라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정한중 교수의 설문 조사 응답 사흘 뒤 같은 내용으로 대한변호사협회 성명이 발표되었다. 12·12 고소·고발인들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 취소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1월20일 헌법소원을 기각·각하했지만, “대통령 재직 중 공소시효 진행이 당연히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전두환·노태우씨를 기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했기 때문이다. 1995년 7월18일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5·18 쿠데타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전혀 다른 곳에서 둑이 터졌다. 1995년 10월19일 박계동 의원이 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폭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노태우씨를 구속했다. 12·12와 5·18 단죄를 요구하는 민심이 다시 들끓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12·12와 5·18의 공소시효를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93년 2월24일까지 정지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12·12와 5·18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전두환씨를 구속했다.
결국 5·18 특별법은 전두환·노태우씨 두 사람과 신군부 일당에게만 해당하는 법률이었다. 그러나 정한중 교수의 발견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모든 대통령의 공소시효가 재임 기간만큼 늘어났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앞으로 당선되는 모든 대통령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통령의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은 세가지 경로로 이뤄진다. 첫째, 내란 또는 외환의 죄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가 가능하다.
둘째,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면 우선 탄핵으로 파면하고, 그 이후 형사상 소추가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
셋째, 대통령이 되기 전의 범죄나, 재직 중 탄핵에 이르지 않을 정도의 범죄는 퇴임 뒤 공소시효가 다시 진행되면서 형사상 소추가 가능하다.
2020년 3월 대검찰청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은순씨의 범죄 혐의를 비호하는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있다. 2020년 4·15 총선 직전에는 손준성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고발장을 만들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전달한 혐의로 최근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고발장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와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명예훼손 피해자로 들어가 있었다.
만약 이 사건에 윤석열 대통령이 연루되었다면 형사상 소추를 피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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