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I·개발이익환수·실거래가 신고 이뤄내 ‘대란’ 잠재웠지만
부동산 대란 4: 참여정부의 공과
10·29 대책 발표 이틀 뒤인 2003년 10월31일(금)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초청 만찬이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렸다. 이명박 서울시장, 김기환 전 대사, 조윤제 경제보좌관, 그리고 몇몇 외국인 기업가가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몇가지를 건의했다. 모임을 마치고 가면서 이명박 시장이 부동산 보유세를 중앙정부에서 거두는 것은 지방분권과 모순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내가 “지자체장들이 선거에서 표 떨어질까 봐 겁을 내 세금 과표를 안 올리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대신 거두어 몽땅 지방에 되돌려주는 겁니다”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11월14일(금) 빈부격차팀 김수현(문재인 정부 정책실장), 김기태(재경부 세제실 과장), 윤성원(건교부 과장·뒤에 국토교통부 차관), 김성환(정책조정비서실 행정관·현재 민주당 국회의원), 안병룡 박사(빈부격차·차별시정위) 등 10·29 대책 주역들과 오찬을 했다. 내가 “실제 작품을 만든 사람은 당신들이고, 나는 방송·신문에 열심히 홍보하러 다닌 것뿐”이라고 칭찬했다.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시중에서는 참여정부는 10·29 대책으로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팀워크도 잘 맞았다.
11월28일(금) 에스비에스(SBS) 윤세영 회장 일행이 대통령 대담을 위해 관저 만찬에 왔다. 노 대통령에게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묻자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딱 하나 못 먹는 가덕도 전어회’라고 했다. 윤 회장이 에스비에스 골프장에 놀러 오라고 초청하니 노 대통령이 웃으며 “우리 참모들은 재미있는 데는 안 데려가고 힘든 데만 데려간다. 의전 등 비서관 다 잘라야 돼”라고 농담했다. 대담자로 온 염재호 교수(뒤에 고려대 총장)는 어릴 적 청와대 부근에 살 때 청와대에 동물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금도 있는데 사슴이 자유롭게 뛰놀지 못해 불쌍하다. 동물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담에서 노 대통령은 정부의 목표가 부동산 가격 하락이 아니고 안정이라고 말해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 대담에서 노 대통령은 “강남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2004년 1월17일(토) 9시~11시30분 참여정부 1년 평가회의가 열렸다(집현실). 수석들이 돌아가면서 1년 성과를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수석보다 배석한 비서관들이 많이 발언하라고 격려했다. 평가라기보다 국정홍보 카피를 찾는 회의였다. 11시 지나 나도 한마디 하려고 마이크를 켜니 노 대통령이 “이 위원장이 발언 신청하는 거 보니 회의가 끝날 때가 된 모양이죠”라고 했다. 내가 “10·29 대책이 성공해가는 것 같으니 ‘강남불패 아니라 투기필패’ 어떻습니까?” 하니 대통령이 찬성했다.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여러차례 발언하자 노 대통령이 “‘대통령의 발언 제지에도 계속 발언하는 최초의 보좌관’ 이런 카피 좋겠네요” 해서 일동 폭소가 터졌다. 권오규 수석이 다시 발언하려고 하자 이번엔 “아까 10분 이상 발언해놓고 또 뭐 할라카노” 해서 또 폭소가 터졌다. 회의 마치고 밖에 나오니 함박눈이 펑펑, 그해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2004년 2월12일(목) 9~12시 건교부 업무보고(세종실)에서 개발이익환수제도가 지난 연말 국회에서 시효 연장에 실패했기 때문에 올해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자,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토지개발이익을 환수하면 누가 개발하려 하겠나, 과거 땅투기 심하던 시절의 형평주의 소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최재덕 차관이 열심히 설명했으나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 내가 발언하려고 마이크를 켜니 노 대통령이 물었다. “내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겁니까? 아니면 이론 제깁니까?” “상대적 크기가 문제이므로 이론을 제기하려 했습니다”라고 하니 노 대통령이 “문제제기로 끝냅시다. 다음에 검토해주세요”라고 말했다. 회의 뒤 최 차관이 “개발이익환수제는 반드시 살려야 하니 대통령을 잘 설득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6월14일(월) 9시 수석회의에서 내가 개발부담금 문제 보고를 시작하자, 노 대통령이 수석회의 주제로는 너무 전문적이라고 중단시켰다. “대통령이 지난주 서면보고를 읽은 뒤 오늘 수석회의 올리라고 지시한 겁니다” 하니 노 대통령이 “대통령 지시도 참 엉터리가 많습니다”라며 껄껄 웃어 모두 웃었다. 노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개발부담금에 거부감을 갖고 있어 이날 보고를 단단히 준비했는데, 그만 수포로 돌아갔다.
개발부담금은 학자들 9할 이상이 찬성하고, 건교부도 동의하고, 토지공개념 3법 중 유일하게 1994년 합헌 결정을 받았는데도 노 대통령은 개발이익을 환수하면 누가 개발하려 하겠느냐며 반대했다. 1990년에 시작한 개발부담금 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때 5년 유예돼 반쪽만 남아 있다가 2003년 말 폐지돼 버렸다. 빨리 복구하지 않으면 수도권, 신행정수도, 지방혁신도시 등에서 토지투기가 재연될 우려가 큰 상황이었는데 대통령의 인식이 제도 복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6월16일(수) 대통령 집무실에 차 한잔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노 대통령이 조윤제 경제보좌관, 김영주 경제수석과 대화 중이었다. 에스케이(SK)글로벌, 엘지(LG)카드 사태 등 주로 금융이 화제였다. 조윤제 보좌관이 건설경기 급냉각을 우려하며 부동산 연착륙론을 주장하기에 내가 반대했다.
“건설업계 연구소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사실 업계 이익에는 배치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 주택 건축의 적정규모는 매년 36만~40만호인데 지난 3년간 50만~60만호씩 지어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고 수도권에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투기 수요에 바탕을 둔 무한정 건설은 이제 더는 안 된다. 그 대신 신행정수도, 혁신도시, (도서관, 복지, 의료 등) 사회적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노 대통령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노 대통령이 개발부담금에 관해 묻기에 좋은 기회다 싶어 “용도지역 변경으로 발생한 불로소득은 환수함이 마땅하다. 외국에도 다 있는 제도이며, 토지공개념 3법 중 유일하게 합헌 판결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니, 노 대통령이 비로소 수긍하며 “그렇다면 합시다. 그 대신 창의적 아이디어로 사업을 벌여 성공한 것은 인정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건 물론 구분해야 합니다”라고 답해 원만히 합의에 도달했다.
후유! 천만다행이다. 삼고초려로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리하여 다음 해 5·4 부동산 대책에 ‘기반시설부담금’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가 부활했다. 판교 분양을 앞두고 들끓는 투기심리를 제압할 5·4 대책, 그리고 종합부동산세를 정식 도입한 8·31 대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헨리 조지 연구회’의 동료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교수(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가 청와대 회의에 참석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었다. 이래저래 위대한 헨리 조지 신세를 많이 졌다.
참여정부는 앞 정부에서 물려받은 부동산 대란 때문에 5년 내내 고생했다. 그래도 고식적 대책을 멀리하고 10·29, 5·4, 8·31 등 근본적 대책과 2006년 말 도입한 총부채상환비율(DTI)로 결국 부동산 대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종래 불합리하게도 면적기준으로 매기던 재산세를 가치기준 과세로 바꾸어 세금의 공평성을 높였고, 다운계약서 관행을 없애고 실거래가 신고를 확립했다. 이렇듯 부동산 정책의 근본 틀을 바꾼 참여정부지만, 국민은 참여정부가 정책 잘못으로 집값, 땅값을 폭등시켰다고 오해했고, 급기야 다음 대선의 큰 패인이 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인위적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무수히 남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한 것은 오로지 참여정부 정책 덕분이다. 정책을 판단하려면 당시만 봐서는 안 되고, 앞뒤 상황을 다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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