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든의 손에서 피어나는, 가장 로시니다운 오페라

임석규 기자 2024. 2. 1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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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출신…브장송 지휘 콩쿠르 첫 수상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국내 초연을 맡은 지휘자 이든(35)은 2021년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완성’이라고 극찬했다. ‘가장 로시니다운 오페라’로도 꼽힌다.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얘기다.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22일부터 나흘 동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로시니가 21살에 작곡한 이 작품은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이탈리아가 주요 활동 무대인 지휘자 이든(35)에게 이번 공연은 국내 오페라 데뷔 무대다. 지난 15일 만난 그는 “리듬을 잘 타면서 벨칸토 선율과 언어의 뉘앙스를 잘 살리는 게 로시니다움”이라며 “관객이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벨칸토는 감정을 풍부하게 살린 이탈리아 오페라의 기교적 창법을 뜻하는데, 로시니는 아름다운 목소리, 화려한 기교, 탁월한 창법을 벨칸토 가수의 조건으로 꼽기도 했다.

배경은 17세기 오스만제국 치하 알제리. 지방 권력자 무스타파는 싫증을 느낀 아내를 젊은 이탈리아 노예 린도로에게 맺어주고 자신은 린도로의 연인 이사벨라와 결혼하려 한다. 이사벨라가 기지를 발휘해 납치된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희극 오페라의 진수’답게 배꼽 잡게 하는 줄거리에, 묘한 흡인력이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주한 알제리 대사관과 간담회까지 열어 세부 표현에 오해가 없도록 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국내 초연에 출연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오른쪽·이사벨라)과 테너 이기업(린도르).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든은 2021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특별언급상’(Mention Speciale)을 받았다. 최종 결선 진출자 3명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상이었다. 70년 역사에, 세계 최고 권위의 이 대회는 그랑프리 1명만 수상하고, 2~3위를 뽑지 않는다. “세 명 모두 독창적이어서 누가 더 훌륭한지 비교할 수 없었다”는 게 당시 심사평이었다. 이든은 이 대회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다.

“일일이 말하지 않고 그냥 제가 노래를 불러드려요. 1분이면 되니까 시간이 많이 단축되거든요.” 그는 이번 공연 리허설에서 성악가들에게 템포나 강세, 호흡 따위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직접 노래로 시범을 보였다. 그의 전공이 원래 성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는 몸을 움직이며 연기하고,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오페라 가수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요.” 그는 “그래서인지 성악가분들이 제 지휘가 편하다고 얘기해주신다”며 웃었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했고, 미국 뉴욕의 매네스 음대에서도 성악(테너)을 공부했다. 카네기홀 독창회도 열었는데, 마음속에선 늘 지휘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렸다. 뉴욕의 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맡게 되면서 지휘로 전환했고, 다시 베르디 음악원으로 돌아가 지휘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는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 오페라에 특화된 지휘자를 꿈꾼다. “소프라노가 노래할 때는 제가 소프라노가 된 것 같고, 합창할 때는 합창단원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오페라를 지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15개 안팎의 오페라 전막을 지휘했고, 지난해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역량을 입증했다.

로시니의 국내 초연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든은 이 작품을 “자기표절이 없는 로시니의 유일한 작품”으로 꼽았다. ‘세비야의 이발사’ 등 로시니의 유명한 오페라들은 다른 작품의 멜로디를 짜깁기한 게 대부분인데, 이 오페라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이른바 ‘로시니 크레셴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솔로 아리아로 시작해 2중창, 3중창, 7중창으로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등장인물 전원이 합창하는 방식이다. 1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7중창 ‘떠나기 전에’(Pria di dividerci da voi& Signore)가 특히 유명하다. 이든은 이사벨라의 아리아 ‘조국을 생각합니다(Pensa alla patria)’와, 3중창 ‘파파타치! 무슨 뜻이지?’(Pappataci! Che mai sento!)를 인상적인 노래로 꼽았다.

24일 오후 3시 공연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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