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모로우’의 기후재난 닥친다?

한겨레 2024. 2. 19.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6회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은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실’(SEAL)이라고 한 제보자는 최근에 그린란드 바닷가에 인간들이 돌아다니며, 빙하 앞에 댐을 짓겠다며 물범들로부터 이주 각서에 도장을 받고 다닌다고 해요. 댐을 짓지 않으면, 영화 <투모로우>에 나온 것처럼 유럽과 미국에 냉혹한 빙하기가 닥칠 거라나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익적 사업이니까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수용을 하겠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북극에 댐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어쨌든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는 법이죠.

5회에서 이어집니다.

빙하로 뒤덮인 하얀 땅 그린란드의 이름이 왜 ‘그린’(초록)일까요? 985년 노르웨이의 바이킹 영웅 ‘붉은머리 에릭’(Erik the Red)이 이곳에 건너와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였대요.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에요. 실제로 그린란드 서남부에는 빙하가 덮이지 않은 평평한 땅이 있어서 여름에는 농사도 지어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빙산에서 잠을 청하는 북극곰의 모습을 담은 작품 ‘얼음 침대’가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가 수상작에 선정됐다. 니마 시라카니/런던자연사박물관 제공

반면 그린란드 남동부는 같은 위도로 따뜻하지만, 험준한 산맥이 바다까지 뻗어 있어서 초록색을 볼 수 없죠. 따뜻한데도 빙하와 빙산이 많은 거예요. 이러한 특이한 기후·지형의 파라다이스에서 20번째 북극곰 개체군이 고립돼 살고 있었던 거죠.

파라다이스의 북극곰이 알려준 대로 우리는 높은 산을 넘어 건너편 피오르로 갔어요. 고개를 넘어 산밑으로 내려가자 빙하 끝자락 부근의 얼음 산 위에서 물범들이 연좌 시위를 벌이고 있었죠.

그린란드 남동부 북극곰과 북동부 북극곰은 뚜렷이 구별되는 행동을 보인다. 파란색 선은 북동부 북극곰이 사냥을 위해 넓은 바다 얼음을 가로질러 여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빨간색 선은 남동부 북극곰이 자신의 고향인 피오르드 근처에서만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c)Laidre et al.Science

“빙하 댐 건설,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이곳에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북극 개발 주식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방문하자, 수백명의 물범들이 모인 거예요. 이 업체의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연단에 나와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2004년 나온 영화 ‘투모로우’를 보셨잖습니까? 여러분이 사시는 곳은 지구 기후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에요. 자동차로 치면 엔진입니다. 지금 빙하가 너무 많이 녹고 있어서, 녹은 물을 가둬야 해요. 그 많은 물이 멀리 나가서 짠물의 해류와 섞이면, 북반구에는 빙기가 닥치고 말 겁니다. 뉴욕이고 런던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동태가 되고 말 거예요,”

한 물범이 소리쳤습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댐을 지으면 우리 삶터는 없어지고 마는데… 당신들의 철저한 자기중심주의는 이제 질렸오!”

“댐이 아니라 플라스틱이이라니까요. 빙붕 바닥에서 녹은 내륙의 민물이 멀리 멕시코에서 온 해류와 섞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부력 좋고 내구성 강한 대형 플라스틱을 해저에 고정하는 겁니다. 콘크리트가 아니어서 환경 피해가 적어요.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들은 세계 최고 호텔급 동물원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거기선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도장만 찍으시면 돼요.”

그린란드 피오르가 얼음으로 뒤덮여있다. (c)Kristin Laidre.University of Washington

이 업체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빙하 주변을 댐 같은 시설물로 둘러싸 막으려는 이유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의 작동 이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이 어렵죠? 조금은 길지만 지구과학 공부를 좀 해보죠. 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거예요.

우선 바다얼음(해빙)과 빙하를 구분해야 헛갈리지 않아요. 바다얼음은 북극해나 남극대륙 주변 바다가 얼어서 생기죠. 겨울에는 얼고 여름에는 녹기를 반복해요. 항상 얼어있는 구역도 있고요.

반면, 빙하는 내륙의 민물이 언 겁니다. 빙하 사진 보면 넓고 하얀 고속도로처럼 생긴 거 있죠? 그게 바로 전형적인 빙하(glacier)예요. 북극에서는 그린란드와 스발바르 제도에 많은데, 빙하 중에서도 5만㎢ 이상 엄청나게 커서 주변 영토를 완전히 뒤덮어버리는 게 있어요. 그걸 빙상(ice sheet)이라고 합니다. 그런 빙상이 바다 끝자락에서도 녹아 소멸하지 않고 수백미터 두께로 바다에 넓게 펼쳐져 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빙상(ice shelf)이라고 하는데, 그린란드와 남극대륙 주변 바다에 많아요.

얼음잔의 얼음이 녹더라도 얼음잔이 넘치지 않는 것처럼, 바다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해수면이 상승하지 않아요. 반면, 내륙의 민물이 얼은 빙하가 녹으면, 새로운 물이 바다에 유입되기 때문에 해수면이 올라가죠.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와 온대 지방의 항구 도시는 이번 세기 중반부터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거예요. 그런데, 그보다 더 폭발력 있는 게 빙하로 인해 해류 시스템이 고장나는 거예요.

엉망진창 기후 상식

바닷물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람에 의해서 이동하는 표층 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심층 순환이죠. 표층 순환은 우리가 보통 해류라고 부르는 것들이에요. 멕시코만류(Gulf stream)라고 들어보셨죠? 따뜻한 멕시코만에서 시작해 미국 플로리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을 거쳐 북상하는 북대서양에 이르는 따뜻한 해류(난류)예요. 여기서 이 해류는 두 개로 갈라져요. 하나는 서유럽의 영국,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리고 북극의 그린란드 근처까지 이어지는 북대서양해류죠. (한국보다 훨씬 높은 북위 51도의 영국 런던이 겨울에도 얼음을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난류 때문이에요.) 나머지는 카나리아해류라는 이름으로 카나리아 제도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내려가죠.

그런데, 북대서양 해류가 아북극의 찬바다와 그린란드 근처에 가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요. 왜냐고요? 이제부터 잘 들어보세요. 북극에는 바다얼음이 생기죠. 이때 물은 얼지만, 소금은 얼지 않아요. 또한 차가운 물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죠. 얼음이 얼면서 소금기 머금은 밀도 높은 물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게 되고, 계속되는 결빙이 이렇게 내려간 물을 적도 쪽으로 느릿느릿 밀어내는 거예요.

이러한 힘으로 바닷물은 표층과 심층을 오가며 컨베이어 벨트처럼 지구를 순환해요. 북극의 바다얼음은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 가까워요. 심장의 펌프질로 혈액을 온몸으로 보냈다가 받아오는 것처럼, 북극 바다의 결빙 운동은 따뜻한 곳에서 온 물을 받아 얼리고 일부는 내려보내서 심층 순환을 통해 따뜻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죠. 이것을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라고 부르는데, 이 덕택에 여기서 시작한 심층 순환은 남극과 태평양으로 이어지고 다시 표층 순환을 통해 대서양과 북극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이런 심층과 표층의 해류 순환 덕택에 지구 기온이 고루 평형을 유지한답니다.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그런데 북극에 중요한 변수가 있어요.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 민물이 바닷물에 추가로 유입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북극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낮아지겠죠? 염분 농도가 낮아지니, 당연히 펌프의 힘이 약해질 거고요.

게다가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이 예전처럼 차갑지 않아서, 해수의 밀도도 낮아졌습니다. 밀도가 높은 차가운 물이어야 잘 가라앉는데, 물이 따뜻해져버렸으니 펌프 힘이 약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당연히 해류 순환의 세력도 약해져요. 영화 ‘투모로우’도 이런 이유로 해류 순환이 멈춰버린 상황을 다뤄요. 멕시코만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영화 속의 뉴욕은 냉랭한 빙기를 맞죠.

영화 ‘투모로우’가 나온 2004년만 해도 이런 상황에 대해 대부분 과학자들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일’ 취급을 했죠. 하지만 2004년 377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해 421ppm까지 치솟았어요.(미국 국립해양대기청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 기준) 이런 무서운 기세에 과학자들도 이제 진지하게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아직 과학계의 주류는 이번 세기 안에 해류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질 거라는 주장에 부정적이지만, 그 반대의 연구 결과가 저명한 학술지에 하나둘 실리고 있죠.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2월26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